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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빅토리십

중앙일보 2017.07.18 02:25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한 요인은 물량 공세였다. 미군의 주력 셔먼탱크는 독일의 판터·티거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5대, 10대가 동시에 달라붙는 인해전술로 독일군의 두 손을 들게 했다. 하지만 물량전을 하려면 보급이 뒷받침돼야 했다. 대서양엔 연합군 보급선을 노리는 독일 U보트가 바글바글했다. 미국은 이 역시 물량전으로 해결했다. 격침되는 배보다 더 많은 배를 건조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표준화된 설계로 대량생산된 배가 리버티십이다. 1만800t을 싣고 11노트로 달릴 수 있는 이 배는 1941년 9월부터 4년간 무려 2710척이 생산됐다. 하루 2척꼴로 만들어진 셈이다.
 
빅토리십은 리버티십의 개량형이다. 보다 많은 화물을 싣고 조금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44년 1월부터 종전까지 534척이 완성돼 미군의 주력 보급함으로 제2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전까지 활약했다. 첫 35척은 연합군 참전국 이름을, 다음 218척은 미국의 도시 이름을, 이후 150척은 대학 등 미국 교육기관 이름을 땄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를 태우고 흥남에서 철수한 메러디스 빅토리와 레인 빅토리호의 이름은 각각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메러디스여대와 테네시주 레인대학에서 온 것이다. 빅토리십은 한국전에 36척이 참전했는데 물자 보급과 병력 수송에서 큰일을 했다. 특히 메러디스 빅토리는 흥남 철수 때 1만4000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철수해 ‘기적의 배’로 불리기도 했다. 승무원 47명, 승객 12명을 태울 수 있었던 배로 이뤄 낸 위업이다.
 
현재 남아 있는 빅토리십은 3척에 불과하다. 많은 배가 민간에 불하돼 화물선으로 쓰이다 해체됐다. 메러디스 빅토리도 93년 중국에 고철로 팔렸다. 다행히 레인 빅토리는 LA항에 보존돼 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흥남 철수 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경남 거제시가 몇 년 전부터 이 배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레인 빅토리호 한국 인도 추진단’이라는 민간단체가 곧 인수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인수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도 2500개밖에 없는 ‘국립 역사유적’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추앙받는 배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게 인도주의의 힘일 것이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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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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