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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북핵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

중앙일보 2017.07.18 02:25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조련사로 변신했다. 오른손에는 채찍, 왼손에는 핵 프로그램이 들려 있다. 엉거주춤 쪼그려 앉은 자세로 그를 바라보는 두 거인, 미국과 중국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10일자 뉴욕타임스 국제판에 실린 만평이다. <삽화 참조>  
 
풍자와 해학이 만평의 본질이다. 웃자고 그렸는데 정색하고 따질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한 컷에 담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통찰은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 ‘완전 성공’이라고 주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대해 미·중이 느끼는 당혹감을 이보다 잘 표현하긴 힘들다. 북한의 계산된 도발 앞에서 두 강대국 미·중이 쩔쩔매고 있다.
 
취임 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이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ICBM을 개발할 가능성에 대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복안이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웬걸, 북한은 미 독립기념일에 맞춰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시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트럼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 자(김정은)는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라는 트럼프의 푸념은 무력감의 실토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손목을 비틀어야 하는 중국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북한이 발사한 화성 14형 미사일이 ICBM이 아니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라며 의미 축소에 급급한 모습이다.
 
김정은에게 핵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아버지 김정일에게 핵은 조건이 맞으면 맞바꿀 수도 있는 흥정의 대상이었지만 갈 길이 구만리 같은 김정은에겐 다르다.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ICBM 개발까지 완성하는 것이 그의 지상 목표다.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수준의 억지력을 확보함으로써 자신과 정권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계산이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어떤 경제적 제재나 압박, 무력시위로도 그의 방정식을 바꿀 수 없다는 게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군사적 옵션은 현실적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중국이 북한 체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 이상 중국을 통한 북한 길들이기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미·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 이후 북한 핵을 현실로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비확산프로그램 담당 국장은 지난주 쓴 칼럼에서 “북한 비핵화의 창문은 닫혔다”면서 “수용할 수 없는 것을 현실로 수용할 때 그나마 위협을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도 “협상을 통한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 종식은 미국의 역량 밖의 일”이라며 “미사일 실험 중단을 통해 위험을 줄이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실에 맞춰 목표를 하향조정하자는 주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의 최고 정보책임자로 활동했던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DNI)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비현실적 목표”라고 지적했다. 북한 핵을 현실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능력을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현실적이란 견해다.
 
핵은 억지력으로서는 효과가 있지만 강압의 수단으로서는 무용지물이다. 핵 독트린의 상식이다. 사용하는 순간 핵은 효력을 상실한다. 북한이 가진 핵의 억지력과 미국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확장 억지력이 균형을 이루는 한 북한이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거나 공격할 수는 없다. 한·미 동맹이 우리의 생명줄인 까닭이다.
 
한·미와 북의 억지력이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한국은 북한 주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남북 간 교류와 협력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북한 사회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북한 핵 문제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 임계점이 올 수도 있다.
 
미국과 소련은 엄청난 양의 핵무기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절을 견뎠고, 지금도 미·러는 핵의 공포 없이 지내고 있다. 매순간 북한 핵을 의식해 공포에 떨고, 한정된 자원을 북핵 대비에 쏟아붓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핵 위협에 말려드는 꼴이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의연하게 우리 길을 가면 된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까마득한 정상(頂上)에 오르려면 당분간 정상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힘들어도 앞만 바라보고 한걸음씩 걷다 보면 결국 정상에 닿는 날이 올 수 있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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