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리셋 코리아] 정개특위와 시민 중심 기구 두 바퀴로 국회 개혁하자

중앙일보 2017.07.18 01:47
정치권 불신 없애려면
국가 원로 개헌 대토론회가 제헌절인 17일 국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관용 전 국회의장, 정세균 국회의장, 김원기·김형오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총리,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박종근 기자]

국가 원로 개헌 대토론회가 제헌절인 17일 국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관용 전 국회의장, 정세균 국회의장, 김원기·김형오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총리,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박종근 기자]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6년 사회통합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회의 신뢰도는 4점 만점에 1.7점으로 조사에 포함된 17개 기관(시민단체·언론사·대기업·법원·검찰 등) 중에서 꼴찌였다. 19세 이상 국민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국회의 신뢰도는 대기업(2.2점)·검찰(2.0점)·법원(2.1)에 밀려 최하위를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 포함된 청렴도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국회(1.6점)는 검찰(1.9점)·법원(2.0점)·대기업(2.1점)에 못 미치는 꼴찌를 기록했다. 이런 국회의 성적표는 국민이 정치권에 품고 있는 불신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런 국회를 개혁하기 위해 국회 내부에서 여러 번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구성됐지만 성과를 도출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지난달 27일 여야가 정개특위 구성을 합의해 이르면 다음주 정개특위가 가동을 개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기존의 특위 활동과 차별화된 성과를 만들어 내려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우선 20대 국회 정개특위는 의원들만의 국회 개혁 논의가 실질적 성과를 이뤄 낼 수 있느냐는 익숙한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놔야 한다. 그동안 의원들이 즐겨 온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시민들에게 개방된 책임정치를 실현할 제도를 과연 도입할 수 있을까? 고양이가 자신의 목에 스스로 방울을 다는 기적이 가능할까?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2명의 개혁 리더가 있다. 2004년 지구당 폐지를 포함한 정치 고비용 구조의 해소와 정당 설립 요건의 완화를 통해 카르텔 정당 체제를 해체시킨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과 고(故) 박세일 서울대 교수다. 당시 박 의장은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저지른 ‘차떼기 불법 선거자금’ 스캔들로 인해 최고조에 달한 국민의 정치 불신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치인들 스스로가 주도하는 선거·정당·정치자금제도 개혁은 아무런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박 의장은 국회가 주도하는 정개특위에 앞서 시민 대표와 전문가들이 정치 개혁 논의를 주도하는 민간기구를 만들고, 여기서 합의된 개혁안을 정개특위가 일괄 수용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박 교수가 보수·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망라된 초당파적이고 대표성 높은 논의기구(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범개협)를 출범시켰다. 2개월에 걸친 활동 끝에 범개협은 ‘돈 먹는 하마’란 비난을 듣던 정당 조직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지구당 폐지와 중앙당 조직 축소방안을 내놓았다. 정당의 정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국고보조금을 현실화하고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차단하는 개혁안에도 합의했다. 보수와 진보 인사들이 망라됐음에도 범개협은 단일안을 도출해 정개특위에 넘길 수 있었다. 박 의장은 정치 개혁을 열망하는 시민 여론을 지렛대 삼아 정개특위가 범개협의 개혁안을 받아들이도록 적극적인 중재를 펼쳤다. 그 결과 국회를 통과한 범개협의 개혁안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당과 선거, 정치자금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런 경험을 감안할 때 촛불 민심의 폭발 뒤 처음 출범하는 20대 국회 정개특위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해 보인다. 첫째, 의원들만으로 구성된 정개특위의 개혁안은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둘째, 겉으로만 초당파적일 뿐 사실상 특정 정당과 내밀하게 연결된 전문가·시민 대표들은 배제하고 실질적으로 독립적이고 초당적이며 대표성 높은 인물들로 구성된 2017년판 범개협이 구성돼야 한다. 셋째, 국회 정개특위와 시민 중심의 논의기구(범개협)가 개혁 논의의 두 바퀴가 되어 이들이 합의하는 내용만이 제도 개혁으로 입법화돼야 한다.
 
 

 

지방의회에 실질적 권한 부여해야
 
분권화 추세에 부응해 국회와 지방의회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도 국회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 돼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분석에 탁월한 정치학자 프셰보르스키와 그 동료들은 직선제 같은 제도적 민주화의 달성뿐만 아니라 정권 교체가 반복적으로 실현됐을 때 비로소 그 국가를 민주주의 체제로 분류했다.
 
지방정치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 즉 민주국가 내에서도 하나의 정당이 장기간 지배해 온 지역(영호남)은 민주적이라기보다는 권위주의적 속성을 보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은 국가 수준에서는 민주주의 체제지만 지방 수준에선 권위주의적 속성이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국가 수준의 민주화와 별개로 지방정치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지방의회는 중앙정치에 예속돼 있고, 영호남은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3가지 개혁안을 제언한다.
 
첫째,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 1~2주에 불과한 공식 선거운동 기간과 지나치게 엄격한 현행 정치자금법은 거대 정당 후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또 기초의원 공천은 사실상 지역구 국회의원이 주도하고, 국회의원들은 이렇게 해서 당선된 지방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재선 가능성을 높인다. 이처럼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간에는 일종의 후견인·고객 관계가 형성돼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을 막고 있다. 정당 공천 폐지가 절실한 이유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정당 공천이 금지되면 토호세력이 그 공백을 메울 것으로 우려한다. 타당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간 유착에 의한 정치 불신을 해소하려면 지금은 기초의원 정당 공천 폐지를 적극 고려할 때다.
 
현실적으로 정당 공천 폐지는 쉽지 않다. 공천을 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 공천을 실질적으로 폐지하기 위해선 모든 정당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 당시 새누리당처럼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는 정당이 하나라도 나오면 합의는 쉽게 깨지게 된다. 따라서 기존 정당 간 합의를 끌어내면서 이를 어길 때 치러야 할 비용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지역 정당과 그 밖의 다양한 단체의 선거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당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정당 난립을 막는 취지로 제정된 현행 정당법은 새 정당의 지방의회 진입을 막고 기존 정당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그러나 지방 자치가 활성화되려면 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나 정당의 출현을 허용해야 한다.
 
셋째, 지방의원 선거구를 새롭게 획정하는 것이다. 현재는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 아래 여러 개의 광역의원 선거구가 있고, 그 아래 또다시 여러 개의 기초의원 선거구가 존재해 일종의 ‘계열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환경은 지역주의가 강한 영호남에서 국회의원·지방의원 간 위계적 후견인·고객 관계와 파벌주의가 형성되는 온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회 선거구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세분화해 만드는 대신 지역주민들의 생활권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획정해야 한다. 이는 정당과 국회가 기득권을 자발적으로 제한해야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그때 국민은 국회를 신뢰하게 되고 국회의 역할 강화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 양질의 인재로 충원돼야
 
국회 개혁의 또 다른 과제는 양질의 인재를 국회의원으로 뽑을 수 있게 하는 ‘투입(input)’ 부문의 개혁이다. 아무리 많은 자원과 제도를 갖추고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국회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스의 의중이나 계파 논리에 따른 관습적 공천으로는 국회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뚜렷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정치인의 충원과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수한 자질의 국회의원은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우선 현직 의원들은 임기 중 의정활동을 평가해 어느 정도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의정활동 성적표에는 의원의 본회의 및 상임위 출석률부터 입법 양, 유권자 대표 기능, 국정 감사와 예산 심의에서의 활약 등 대표성·생산성과 연관된 다양한 활동지표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의원 경험이 없는 예비후보자들의 경우에는 그들과 유사한 정치 이력이나 사회 경력 또는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선배 의원들의 의정활동 기록을 참고자료로 활용하되 특정 직군이나 연고 집단이 과다 대표되지 않도록 안배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회의원은 학계나 법조·관료 경력 등 고학력 엘리트 집단이 주로 충원됐지만 이런 엘리트 계층의 국회 충원이 곧바로 성공적 의정활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유념해야 한다.
 
국회 운영은 국회법 대신 규칙으로
 
주먹구구식인 국회 운영방식을 예측 가능하게 개선하는 것도 국회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국회 운영은 국회법, 즉 법률로 규율해 왔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나 행정권력이 국회 운영을 간섭하거나 심지어 조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삼권분립의 근간을 해치는 큰 문제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가 정부의 자의적인 행정 입법을 막기 위해 시행령 제정을 통제하는 골자의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국회엔 자율권이 있어 국회의 위치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회는 법 대신 규칙의 형태로 국회의 운영방식을 규율할 필요가 있다. 또 그 규칙은 국회 의사 운영과 관련해 세세한 부분까지 규율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 운영이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하게 이뤄질 수 있다.
 
대표 집필=장훈 중앙대 교수·김선택 고려대 교수·이재묵 한국외대 교수·구본상 연세대 전문연구원 
정리=강찬호 논설위원 stoncold@joongang.co.kr
기자 정보
강찬호 강찬호 기자

Innovation Lab

트렌드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