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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중년 남성의 두 번째 사춘기 … 유쾌한 반항

중앙일보 2017.07.18 00:27
'갱춘기' 4050세대
 
김성주·안정환·김용만씨 등 ‘갱춘기’ 남성 방송인들이 스위스 리기산을 오르는 기차에서 바깥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이 장면은 지난 2월 JTBC ‘뭉쳐야 뜬다’ 13회분에서 방영됐다. [사진 JTBC]

김성주·안정환·김용만씨 등 ‘갱춘기’ 남성 방송인들이 스위스 리기산을 오르는 기차에서 바깥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이 장면은 지난 2월 JTBC ‘뭉쳐야 뜬다’ 13회분에서 방영됐다. [사진 JTBC]

연예인 4인방의 패키지 여행기를 담은 JTBC ‘뭉쳐야 뜬다’, 철들지 않은 중년 솔로남의 생활기를 담은 SBS ‘미운 우리 새끼’,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시금 청춘을 꿈꾸는 아빠들의 일탈 보고서 MBC ‘가출 선언-사십춘기’. 4050 남성들의 유쾌한 일탈을 다룬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회사와 가정을 오가며 경쟁과 스트레스에 치여 사는 중년 남성들의 로망이자 대리만족 도구인 셈이다. 몸은 갱년기에 접어들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사춘기인, 이른바 ‘갱춘기’의 반란이 시작됐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아빠 최정훈(40·경기도 성남시)씨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집에서 잠을 자거나 부인·아이들과 외식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중 최근 갱춘기 남성의 반란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애청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야겠다는 것. 대학 시절 록밴드 음악에 심취했던 최씨는 그때부터 용돈을 모으기 시작해 최근 100만원 상당의 고급 스피커를 장만했다. 그는 “집에서 음악을 할 생각에 퇴근 후 발걸음이 빨라진다”며 “‘둥둥둥둥’ 하고 울리는 드럼 소리가 심장박동처럼 느껴져 짜릿하다”고 말했다.
 
싱글남·돌싱남 주도
 
'뭉쳐야 뜬다’ 멤버인 개그맨 김용만씨는 50대다.

'뭉쳐야 뜬다’ 멤버인 개그맨 김용만씨는 50대다.

최씨처럼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갱춘기가 많아지면서 4050세대 남성의 소비 품목이 달라지고 있다. 서울 잠원동의 킴스클럽 강남점 내 수입 생활가전 멀티숍 큐레이션에이는 고객 70%가 ‘남성’이다. 김성수(45) 대표는 “최근 중년 싱글남의 생활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다이슨·블루에어 같은 고급 가전제품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30~40%가량 올랐다”며 “1년 전만 해도 아내에게 필요한 가전제품을 선물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최근엔 자신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구입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경기도 판교 알파돔시티의 일렉트로마트는 대표적인 남성 전용 체험형 쇼핑몰이다. 이곳에선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4050세대 남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남성을 위한 패션·뷰티·아웃도어·레저용품 등을 직접 사용해 보고 살 수 있어 쇼핑에 익숙지 않은 남성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피규어·프라모델·RC카 체험장은 남성 키덜트족에게 인기다.
 
패키지 여행상품 판매도 급상승세다. 지난해 11월 갱춘기의 패키지 여행을 다룬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뜬다’가 한몫했다. 하나투어의 경우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난해 11월께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5% 늘었고, 올해 6월엔 전년 동월 대비 37%나 증가했다. 조일상 하나투어 홍보팀장은 “최근 몇 년간 자유여행이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까지 패키지 여행 수요가 정체돼 있었다”며 “패키지 여행상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방송에서 소개된 여행 코스 가운데 라오스, 싱가포르, 베트남·캄보디아 코스의 예약률은 지난해보다 각각 226%, 217%, 210%나 늘었다.
 
일부 남성 연예인이 프라모델·피규어를 소장하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취미생활에 돈을 투자하는 갱춘기 남성도 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40~59세 남성의 올해 상반기 프라모델·피규어의 구입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가 늘었다. 캠핑·낚시 장비(27%), 음향기기·카메라(15%) 구매율도 상승했다. 외모를 세련되게 가꾸는 이른바 ‘아재 파탈(아재+옴파탈)’ 열풍으로 의류는 30%, 화장품·향수는 10%씩 늘었다. 고현실 G마켓 패션뷰티실장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40·50대 중년 남성들이 늘어나면서 패션·뷰티·피규어·장난감 등 관련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갱춘기 남성이 트렌드의 중심이 된 이유는 뭘까.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병길 교수는 “개인의 욕구가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면 트렌드가 만들어진다”며 “직장·가정에 헌신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에게 투자하고 싶어 하는 중년 남성의 보상심리 욕구가 최근 힐링을 소재로 한 방송의 인기와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건강한 노후 준비
50대 싱글남인 가수 김건모씨가 전동 기기를 타고 거리를 달리고 있다. [사진 SBS ‘미운 우리 새끼’]

50대 싱글남인 가수 김건모씨가 전동 기기를 타고 거리를 달리고 있다. [사진 SBS ‘미운 우리 새끼’]

 
“아내 없인 밥도 못 먹는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최근엔 ‘돌싱남’ ‘싱글남’ 같은 1인 가구가 늘면서 갱춘기 남성은 자신의 외모뿐 아니라 건강까지 스스로 관리하는 데도 익숙해지고 있다.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즐기면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배우 이경영씨와 반려견 피움이. [사진 채널A ‘개밥 주는 남자2’]

배우 이경영씨와 반려견 피움이. [사진 채널A ‘개밥 주는 남자2’]

갱춘기 남성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는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연 교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갱년기’하면 ‘우울증’을 떠올릴 정도로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투자할 줄 아는 갱춘기족은 노후를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춘기의 반항을 보듬고 쓰다듬어야 하듯이, 갱춘기의 반란에도 이해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4050 남성들이 가장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리고 일탈을 추구해서는 곤란하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나만을 위한 시간이 균형을 이뤄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세로토닌 호르몬이 잘 분비되기 때문이다. 연 교수는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균형 실패’가 생기면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들고 우울감이 심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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