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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논 15마지기 1시간 만에 자갈밭으로"… 290㎜ 물폭탄에 아수라장 된 청주시

중앙일보 2017.07.17 15:46
지난 16일 충북 청주시에 290㎜ 달하는 폭우가 내리면서 상당구 월오동 마을 농경지가 토사로 뒤덮였다. 최종권 기자

지난 16일 충북 청주시에 290㎜ 달하는 폭우가 내리면서 상당구 월오동 마을 농경지가 토사로 뒤덮였다. 최종권 기자

 
“봄 가뭄에 어렵사리 키운 벼가 하천물에 몽땅 쓰러졌습니다.” 17일 오전 10시 충북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서 만난 박장순(48)씨는 “폭우로 15마지 논이 물에 잠겨 1년 농사를 망쳤다”며 눈물을 훔쳤다. 박씨는 월오동에서 9900㎡(3000평) 논에 벼를 기르고 있다. 가뭄이 극심했던 지난달 양수기 2대를 구매해 경작지 옆 월오천에서 물을 퍼 나르며 애지중지 키운 벼가 이번 폭우에 쓰러지고 개울에 휩쓸려 나갔다.
 
박씨는 농사를 지으며 중장비 일을 한다. 이날도 포클레인을 직접 몰고 무너진 하천 둑을 쌓고 끊긴 농로를 연결하고 있었다. 박씨는 “어제 오전 9시쯤 갑자기 비가 쏟아져 하천 하류로 급히 달려가 논둑에 마대를 쌓았는데 1시간 만에 월오천이 범람하면서 논으로 하천물과 자갈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고 말했다.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월오천 둑이 무너지면서 농로가 끊긴 현장을 한 주민이 바라보고 있다. 최종권 기자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월오천 둑이 무너지면서 농로가 끊긴 현장을 한 주민이 바라보고 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 16일 청주에 290㎜ 달하는 폭우가 내리면서 월오동 마을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번 비로 50여 가구의 주택이 침수되고 농경지와 농로가 망가졌다. 월오천 쪽으로 이동하자 300m 길이의 둑이 온데간데없이 무너져 있었다. 이 둑은 마을 주민들이 왕래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 주민은 “청주시가 월오천 정비사업을 하면서 제방 안쪽에 유실방지 벽돌을 쌓았는데 이게 허무하게 무너졌다”며 “하천 정비사업으로 둑을 건드리는 바람에 오히려 제방이 약해져 화를 자초한 것 같다”고 말했다. 폭우로 지름 30㎝ 크기의 상수도관이 끊어지면서 주민들은 지난 하루가 넘도록 식수를 공급받지 못했다.
16일 오전 충북 청주시 월오동 주민들이 집안에 쌓인 흙과 물을 빼내고 있다. 최종권 기자

16일 오전 충북 청주시 월오동 주민들이 집안에 쌓인 흙과 물을 빼내고 있다. 최종권 기자

 
주택가에서는 주민들이 방에서 흙과 물을 빼냈다. 일부 주택은 처마가 주저앉아 보조 기둥으로 겨우 버텼다. 돌담이 무너져 길바닥 곳곳에 흩어진 모습도 보였다. 상류에서 휩쓸려 온 나뭇가지와 비닐, 자갈이 마을 곳곳을 뒤덮었다.
 
마을 주민 박태규(46)씨는 “방에 있던 가구와 냉장고가 물에 휩쓸려 나가고 전자제품은 물에 잠겨 당분간 집에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청주시에서 폭우에 앞서 월오천 하류쪽 배수 관리만 잘했어도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충북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청주시에서만 월오동 등 10개 마을에서 22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택 침수 및 파손은 모두 600건에 달한다. 농작물 2119㏊와 하우스 327㏊, 축사 25동이 매몰되거나 유실됐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청주 IC 인근 하천이 범람하면서 피해 현장에 중장비가 투입돼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청주 IC 인근 하천이 범람하면서 피해 현장에 중장비가 투입돼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충북대학교 정문 앞 상인들은 피해 복구에 앞서 청주시에 불만이 가득했다. 이곳은 여름철 집중호우로 상습 침수피해를 겪고 있는 곳이다. 지난 폭우에도 하수관에 물이 역류하면서 상가에 물이 차는 등 침수 피해를 겪었다.
 
상가 주민들 “대규모 우수저류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청주시는 지난해 5월 106억원의 예산을 들여 1만3000㎥의 빗물을 임시 저장할 수 있는 우수저류시설을 충북대 정문 지하에 준공했다. 청주시는 폭우 이틀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수저류시설은 (시간당)80㎜, 일 강수량 330㎜ 달하는 큰 비에도 끄떡없다”고 홍보했다. 이런 말을 믿은 탓에 주민들의 실망이 더 컸다.
충북대 정문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정영배씨가 고장난 복사기를 선풍기로 말리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대 정문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정영배씨가 고장난 복사기를 선풍기로 말리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대 정문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오건영(47)씨는 “비 소식을 듣고 오전 7시50분쯤 가게로 부랴부랴 달려왔더니 이미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 있었다”며 “큰 돈을 들이고 제 역할을 못하는 우수저류시설을 왜 지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그는 “우수저수시설 인근에서 물이 1m까지 치솟아 역류하고 하수도관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복사가게를 운영하는 정영배(51)씨는 “가게 안에 있던 3000만원짜리 복사기 5대와 1000만원짜리 제단기가 물에 잠겨 당분간 영업을 못하게 됐다”며 “우수저류시설이 생겨 안심하고 있다 봉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육군 37사단 장병들이 17일 청주시 수해 복구현장에 투입돼 상가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육군 37사단 장병들이 17일 청주시 수해 복구현장에 투입돼 상가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폭우 당시 범람 위기를 맞았던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명암저수지 도로변은 복구가 한창이었다. 계곡에 있던 토사가 도로변으로 흘러 넘치면서 왕복 2차로 한 개 차선(300m)을 막았다. 주민 임영순(71·여)씨는 “평소 산책을 하던 탐방로가 망가져 속이 상하지만 대규모 인명피해가 없어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주말 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와 증평·진천·괴산군 등 충북 4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명암저수지에 인근 도로에 쌓인 토사를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최종권 기자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명암저수지에 인근 도로에 쌓인 토사를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최종권 기자

토사가 유출된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명암저수지가 흙과 자갈로 가득하다. 최종권 기자

토사가 유출된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명암저수지가 흙과 자갈로 가득하다. 최종권 기자

 
지난 16일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진 기습적인 폭우로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등 6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집이 물에 잠기면서 248세대, 517명의 이재민이 마을회관 등을 대피했다. 주택 2동이 파손되고 686동이 물에 잠기는 피해도 입었다. 농경지 4962㏊도 침수됐다.
 
정부는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납세자의 세금신고·납부기한을 연장해주기로 결정했다. 이달 25일까지인 부가가치세 1기 확정신고, 다음 달로 예정된 법인세 중간예납 신고·납부기한을 최대 9개월까지 연장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이미 고지한 국세에 대해서도 최대 9개월까지 징수를 유예하고 체납액이 있는 납세자에게서 압류한 재산은 체납 처분집행을 최대 1년 미루기로 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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