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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왕실 사랑한 흰색 소바의 비밀

중앙일보 2017.07.17 10:13
한국에 평양냉면이 있다면 일본엔 소바(메밀 국수)가 있다. 일본의 소바 사랑은 한국의 냉면 사랑 못지않다. 그만큼 오랜 시간 명성을 이어온 소바집이 많다. 1789년 도쿄 아자부주반(麻布十番)에 문을 연 '사라시나 호리이(更科堀井)'는 그중 하나다. 6월 19일 웨스틴조선호텔 뷔페식당 ‘아리아’와 서울 청담동 SSG의 일식당 ‘호무랑’ 초청 행사 참석차 한국을 찾은 사라시나 소바집의 9대손 호리이 요시노리(堀井良教·56) 셰프를 만났다. 
눈처럼 새하얀 소바로 유명한 일본의 소바 명가 사라시나 호리이의 9대손 요시노리 호리이(56) 셰프가 직접 만든 메밀 면을 들고 있다. [사진 웨스틴 조선호텔]

눈처럼 새하얀 소바로 유명한 일본의 소바 명가 사라시나 호리이의 9대손 요시노리 호리이(56) 셰프가 직접 만든 메밀 면을 들고 있다. [사진 웨스틴 조선호텔]

왕실이 사랑한 하얀 소바
요시노리 호리이 셰프가 반죽하고 있다. 메밀의 80% 이상을 깎아 얻은 하얀색 메밀가루에 따뜻한 물을 부어 반죽한다. [사진 웨스틴 조선호텔]

요시노리 호리이 셰프가 반죽하고 있다. 메밀의 80% 이상을 깎아 얻은 하얀색 메밀가루에 따뜻한 물을 부어 반죽한다. [사진 웨스틴 조선호텔]

사라시나 소바는 거무튀튀한 다른 메밀면과 달리 눈처럼 하얗다. 메밀을 10~20%만 남기고 껍질을 모두 깎아냈기 때문이다. 메밀 특유의 구수한 향은 덜하지만, 텁텁함은 줄고 보들보들해져 목에 부드럽게 넘어간다. 반죽할 때 유자나 차 향을 더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문제는 메밀을 많이 정제할수록 단백질(글루텐) 함량이 낮아져 반죽이 어렵다는 것이다. 호리이 셰프는 “물만 넣어선 반죽이 안 된다"며 "메밀 가루를 따뜻한 물에 개면 점성이 생겨 풀처럼 되는데 이것을 함께 넣어 반죽한다”고 설명했다. 
사라시나가 소바를 이렇게 새하얗게 만들기 시작한 건 1870년대 무렵이다. 호리이 셰프는 “전에도 메밀의 50% 정도를 깎아 다른 소바보다 하얀 편이었지만 이때부터 메밀의 20%만 남기고 다 깎아 새하얀 소바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일반 소바 한그릇 가격은 15엔(한화 약 150원) 정도였는데 사라시나 소바는 이보다 7배 비싼 100엔에 팔았다. 가격이 비싸도 고급 소바로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사라시나 소바는 일본 왕실에서 즐겨 먹었다. 왕실 요청으로 1870년대부터 소바를 왕실에 보냈고, 1989년 아키히토(明仁) 일왕 즉위 때까지 이어졌다. 
 
주인이 망친 걸 주민이 살리다
일본 도쿄 아자부주반에 있는 사라시나 호리이 소바 가게. [사진 웨스틴 조선호텔]

일본 도쿄 아자부주반에 있는 사라시나 호리이 소바 가게. [사진 웨스틴 조선호텔]

왕실에 납품한 소바 명가인데도 사라시나 소바 가게는 1920년대 문을 닫아야 했다. 본업을 망각한 7대손이 말 그대로 가게를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호리이 셰프는 “가문 어른인 7대손이 소바는 뒷전이고 카메라 같은 고급 취미 생활에 빠졌다”며 “당시 원숭이만 100마리를 키웠다고 들었다”고 했다. 
오랜 역사에다 왕실에까지 소문난 지역 명문 소바 가게를 지킨 건 아자부주반 지역 주민이다.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아 사라시나 살리기에 나섰다. 망했던 가게는 지역 공동체가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에 속해있던 호리이 셰프의 아버지(8대손)가 85년 독립해 지금 가게가 있는 아자부주반에 가게를 열었다. 가문으로서는 잘 된 일이었지만 호리이 셰프 개인에겐 중요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85년 아버지는 가게를 한 곳 더 열 계획이라며 아들에게 “함께해 달라”고 부탁했다. 호리이 셰프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네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만두겠다”는 아버지의 부탁에 결국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그는 “내가 하지 않으면 가업이 끊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비록 아버지 뜻을 따른 것이었지만 가업을 잇기로 한 이상 최선을 다했다. 주방에 있던 기계를 만지다 사고로 오른손 검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기도 했다. 반죽부터 제면까지 일일이 손으로 해야하는 소바의 특성상 손의 감각이 중요한데 큰 장벽을 만난 셈이다. “좌절하지 않았냐”고 묻자 “처음엔 불편했지만 익숙해졌다”며 여유롭게 웃었다.  
 
쯔유에 면발 살짝만 찍어
그는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조리법대로 당일 만든 면만 판매한다. 우동면과 달리 숙성이 필요없어 당일 반죽해 면발을 뽑아놓는다.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삶는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쯔유에 넣는 설탕을 백설탕에서 흑설탕으로 바꾸고 양도 줄였다. 호리이 셰프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걸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건강을 생각해 설탕은 줄였다”고 설명했다.  
직접 만든 하얀색 소바를 들고 있는 요시노리 호리이 셰프. [사진 웨스틴 조선호텔]

직접 만든 하얀색 소바를 들고 있는 요시노리 호리이 셰프. [사진 웨스틴 조선호텔]

아자부주반 식당은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손님의 10%가 한국인일 정도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대합이나 바지락을 넣고 끓인 소바를 좋아한고 한다. 그는 가게를 찾아오는 한국인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면발을 쯔유에 살짝만 찍으라”는 것이다. 일본에선 면발을 쯔유에 살짝 찍어먹는데 한국인은 아예 담가 먹으니 당연히 짜게 느껴질수 밖에 없다는 이유다. 그는 “쯔유가 짜다며 물을 섞기도 하는데 면발을 살짝만 찍어야 소바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금까지 가업을 잇는데 집중해 온 그는 앞으로는 사라시나 소바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우선 올해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에, 내년엔 뉴욕에 매장을 열 예정이다. 사라시나를 키우는 것만큼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바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이나 식당을 돕는 것이다. 한때 명맥이 끊길 뻔 했던 사라시나 가문의 소바를 지역 주민들이 도와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듯 자신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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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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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송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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