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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출산 휴가 때도 팩스 받아 일해 … 그런 세상 바꾸려고 정치 시작

중앙일보 2017.07.08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축하 화분이 가득했다. 지난달 26일 바른정당 대표로 선출된 이혜훈(53)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 4일 오전 그를 만나는 동안 수시로 전화가 울렸다. 주호영 원내대표였다. 김상곤 교육부총리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과 관련해 대책을 상의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상곤만은 안 된다고 줄기차게 얘기했는데, 그냥 무시하고 국민의당이랑 처리해버렸잖아요. 임명하면 보이콧하기로 했어요.”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4일 “여론 지지도가 높으니 그냥 야당도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나랏일도 여론조사 해서 정해버리지 국회는 왜 필요하냐”며 문재인 대통령의 일방적인 장관 임명을 비판했다. [신인섭 기자]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4일 “여론 지지도가 높으니 그냥 야당도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나랏일도 여론조사 해서 정해버리지 국회는 왜 필요하냐”며 문재인 대통령의 일방적인 장관 임명을 비판했다. [신인섭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잘해서 겁이 난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뉘앙스가 조금 달라요. 기자들이 ‘잘하는 게 기쁘지 않으냐’고 물어서 ‘아이고, 기쁘기는… 잘하니까 무섭지’ 이랬는데 그거를 ‘무섭도록 잘한다’고 바꿔버렸어요.”
 
지금 평가는 어떻습니까.
“걱정되는 점이 많아졌습니다. 그 말을 했을 때는 인사도 대통령 비서실 일부만 했고, 대통령이 라면을 끓여주고, 이런 소통 행보를 할 때라 잘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까 인사도 부실하고 5대 원칙도 스텝이 꼬였어요. 그러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양해를 구해야지, 그냥 강행하잖아요. 특히 ‘여론 지지도가 높으니 그냥 야당도 받아들여라’ 이런 취지로 말하는데, 그러면 국회가 필요 없잖아요. 나랏일도 여론조사 해서 정해버리지 왜 국회는 있으며 ‘협치(協治)’라는 말은 성립이 안 되는 거잖아요.”
 
추경을 해야 한다는 입장 아닙니까.
“하자고 했는데…지금 이 단계에서 ‘김상곤을 임명했지만, 추경은 하겠다’고 말하기 참 어려운데…기본적으로 추경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는 가지 않으려고 해요. 문 대통령의 국회를 존중하지 않는 행태가 먼저 바뀌어야겠지만….”
 
4당 체제는 어떤 식으로 굴러갈까요.
“참 골치 아플 것 같아요. 한쪽에는 107석을 가진 당이, 단 한 번도 반성하지 않는 당이 있잖아요. 대한민국의 진보가 100가지면 100가지를 다 잘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진보를 ‘절대 악’으로 규정하면 국정 운영이 어렵잖아요. 또 여당은 지지도를 방패 삼아 야당과 국회를 존중하지 않고. 이러다 보니 중도에 있는 정당이 옳은 얘기를 해도 결정권을 갖기 어려운 것 같아요.”
 
겨우 교섭단체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강력한 힘으로 독주하고, 또 대통령을 견제하는 대척점에 있는 다른 거대 정당 하나로 사람들이 몰려가서 양극화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보수 정당은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아 집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수구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결코 외연을 넓힐 수 없다고 보거든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는 다르지 않나요.
“그렇기는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해요.”
 
‘보수 분열’ 프레임이 또 제기될 텐데….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이겼다고 얼마나 ‘가짜 뉴스’를 많이 돌렸습니까. 사실은 선거법 위반입니다. 그렇게까지 보수 유권자를 겁박하며 밀어붙였지만 결국 뚜껑을 열어 보니 합했더라도 무망한 일이었다는 걸 지금 깨달은 거예요. 차라리 5년 후에 보수가 집권하는 길은, 통합보다는 보수의 희망을 살리는 게 먼접니다. 국민 10%의 지지를 넘기도 어려운 ‘극우 수구’를 중심으로 보수가 통합되면 5년 뒤에도 집권은 불가능합니다.”
 
바른정당이 생각하는 보수가 뭔가요.
“법을 지키고 공동체를 지키는 겁니다. 지키기 위해 바꾸는 거잖아요. 영국의 ‘베버리지 리포트’도 보수당이 만든 것입니다. 산업혁명으로 굉장히 근로자의 삶이 열악해지고, 프랑스에서 시민혁명이 터지는 걸 보면서 영국의 보수들이 ‘아, 우리가 내줘야 우리 것을 지키는 거구나’ 깨달았죠. 저희는 북핵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철통같이 지키는 ‘안보 보수’를 생각하고요. 안으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협이 ‘양극화’라고 봅니다. 이거를 해소하는 게 개혁보수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낡은 보수는 시장 실패에서 생기는 문제점들에 굉장히 소홀하다. 취약 계층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재벌과 같이 힘 있는 경제 권력이 반칙·행패를 부려도 눈감아 주고 많은 경우 비호·대변하거든요. 안보를 봐도 걸핏하면 자기들이 싫은 사람, 경쟁자를 종북 몰이해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지난 선거에서 홍준표 전 후보가 서울시 한복판에서 수천 명을 모아놓고 ‘문재인이 집권하면 김정은이 집권하는 것이다’고 했어요.”
 
‘수혈론’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이미 정치권에 있는데 우리 당 소속이 아닌 분들을 설득하는 것이고, 하나는 아직 정치를 시작하지 않은 꿈나무죠. 대권 주자 그룹을 묶어서 토크투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내에도 갈등이 있다고 보도되는데.
“있습니다. 있는데…. 첫째는 제 부덕이고, 그래서 제가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더 안고, 더 숙이고, 그래야 해결되는 문제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중도정당이 존속하려면 선거제도가 고쳐져야 하는데.
“야 3당은 개헌에 대한 큰 틀은 이미 공감대가 이뤄져 있잖아요, 합의도 되어 있고. 이걸 대통령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야당은 중·대선거구제를 상당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의외로 여당 안에서도 얘기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지역구도 타파 때문에.”
 
개헌의 권력 구조에 대해 어떤 합의가 이뤄졌다는 겁니까.
“개헌특위에 내놓은 야 3당의 공식적인 안은 분권형 대통령제죠. 야 3당이 똑같아요. 외교안보는 대통령이 하고, 나머지는 국회에서 과반으로 선출되는 총리가 하자고 되어 있습니다. 차이는 우리 당은 4년 중임 대통령인데, 국민의당은 6년 단임으로 하자, 이것만 달라요. 자유한국당은 우리랑 같이 4년 중임인데, 외치까지 총리에게 주자고 합니다.”
 
이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시절 셋째 아들을 출산하면서 정치를 생각했다. 임신을 숨기고 도봉산 직장 산행에 참석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산통(産痛)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등산복에 등산배낭을 멘 산모…. 그런데도 상사의 첫마디는 위로가 아니라 “뭐야, 출산휴가 써?”였다.
 
“출산휴가 2개월 동안 거의 매일 집에서 팩스를 받아 일했어요. ‘민간 의료보험 활동화, 5시까지’ 뭐 맨날 이런 게 오니까. 정말 이런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S BOX] 원조 친박이었다가 ‘멀박’ 거쳐 ‘짤박’ 된 이 대표
이혜훈 대표는 원조 친박(친박근혜)이다. 그런 그가 ‘멀박(멀어진 친박)’을 거쳐 ‘짤박(짤린 친박)’이 됐다.
 
많은 사람이 이 대표 TV토론을 보고 박 전 대통령을 찍었으니 책임이 커요.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많아 좀 바꿔야겠다는 점들이 눈에 보이고, 그런 얘기를 지속적으로 했어요. 사람들은 ‘제발 그런 얘기하지 마라. 찍힌다’고 했는데…”라며 웃었다. 그는 비선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후보도 같이 앉아 한 시간 이상 토론해서 중요한 결정을 했는데, 차를 타고 가서 한 15분 지나면 갑자기 전화로 이걸 확 뒤집어 버리는 거예요. 이유를 설명도 못해요. 2007년 경선 방식도 그렇게 뒤집어 갑자기 이명박 후보 쪽 요구대로 받아주라고 해 표에서 이기고도 진 거예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누구에게나 ‘발신표시 제한’으로 전화한다.
 
“굉장히 모멸감을 느낍니다. 같이 일을 하는 정치적 동지인데. 세상과의 소통 채널은 4인방뿐이에요.”
 
이 대표는 여성단체 대표들을 박 후보에게 소개하며 “앞으로 자주 이렇게 소통하시죠”라고 했다가 레이저를 맞았다. “의원님이 하세요”라고.
 
그는 ‘저녁 8시 이후 박 대통령이 TV만 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일을 물으니 “대통령님이 저렇게 되시고 나니까 이제 얘기 안 하고 싶어요”라며 입을 다물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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