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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살해” 22세 청년의 죽음, 미국 대북 응징론 불지피다

중앙일보 2017.06.21 01:51
호기심으로 북한에 발을 디딘 건장한 청년이 18개월 만에 혼수상태로 고국에 돌아왔고, 엿새 만에 짧은 생을 마쳤다. 북한에 억류됐다 돌아온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22)가 끝내 숨지자 미국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웜비어의 친구들뿐 아니라 그를 전혀 모르는 이들까지도 애도 대열에 합류했다고 보도했다. 주요 정치인들이 그의 죽음을 북한 정권에 의한 ‘살인’이라고 규정하는 등 미국 내 정치적 비판도 격렬해지고 있다. 웜비어의 죽음이 북·미 긴장을 한층 고조시키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조짐이다.
 
웜비어의 가족은 이날 죽음을 알리는 성명을 내고 “불행히도 아들이 북한에서 받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학대로 인해 오늘의 슬픈 결과 이상을 기대할 수 없었다”며 북한을 지목했다.
 
오토 웜비어가 19일 사망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북한을 규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토 웜비어가 19일 사망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북한을 규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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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즉각 성명을 냈다. 북한을 ‘잔혹한 정권(brutal regime)’이라고 부르며 강한 어조로 규탄했다. 이날 백악관에서 과학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웜비어가 억류된 1년 반 동안 많은 나쁜(bad) 일이 발생했다. 우리는 앞으로 그걸(북한을) 핸들링할 수 있다”며 강경한 대북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의회에서는 대북 강경파가 목소리를 높였다. 존 매케인(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시민인 웜비어가 김정은 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murdered)”고 말했다. 매케인은 “그는 인생 마지막 한 해를 북한 주민들이 70년간 갇혀 있었던 악몽-강제노동, 극심한 기아, 조직적인 잔학행위, 고문, 살인-속에서 살아야 했다”며 “미국은 적대세력에 의한 시민의 살해를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벤저민 카딘(민주당) 의원도 “웜비어는 억압적이고 살인적인 김정은 정권 때문에 죽었다”며 “북한은 그들의 지속적인 야만적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 민심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워싱턴을 방문한 정부와 국회 인사들은 “미국 내 여론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보다 웜비어에 더 민감하다”고 말한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지 6일 만인 19일(현지시간) 숨진 웜비어가 지난해 2월 북한에서 기자회견 당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혼수 상태로 풀려난 웜비어 모습. [AP·AFP=연합뉴스]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지 6일 만인 19일(현지시간) 숨진 웜비어가 지난해 2월 북한에서 기자회견 당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혼수 상태로 풀려난 웜비어 모습. [AP·AFP=연합뉴스]

실제로 미국에선 대북 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잦아드는 대신 대북 ‘응징론’이 확산되고 있다. 29~30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 의제를 최종 조율 중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반드시 북한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북한이 불법 구금 중인 미국인 3명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의 강경론을 비판해 왔던 리언 패네타 전 국방장관도 CNN에 출연해 “북한을 잔혹한 정권이라고 비판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 옳다. 웜비어에게 북한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철저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거들었다. 트럼프 행정부와 미 의회는 미국인의 북한 여행 제한조치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에서 북한을 찾는 여행객은 연간 5000명 정도며 이 중 1000여 명이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민주당 애덤 시프 하원의원과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은 관광 목적의 북한 여행을 전면 금지하고 그 외의 방문객에 대해서는 정부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하는 ‘북한여행통제법’을 지난달 발의한 바 있다. 의회에서는 시민의 자유를 구속한다는 이유로 이를 통과시키길 주저해 왔지만 웜비어의 죽음이 법안 통과의 계기가 될 것으로 현지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21일 워싱턴에서 열릴 미·중 외교안보대화를 계기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며 외교적 압박 수위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CNN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도 말은 강하게 했지만 실제로 북한이나 중국에 펀치를 휘두르지는 않았다”며 “웜비어의 사망은 트럼프가 대북 강경노선을 걷게 하고 베이징과의 긴장도 높이도록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이경희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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