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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 구하려 전쟁 중인 나라까지 잠입, 지금도 등골 오싹

중앙일보 2017.06.21 01:00
세계장신구박물관 입구에 있는 ‘호박의 방’. 이강원 관장은 속에 곤충·깃털·이파리 등을 품은 호박을 “지구의 숨결을 품은 보석”이라고 소개했다. [최정동 기자]

세계장신구박물관 입구에 있는 ‘호박의 방’. 이강원 관장은 속에 곤충·깃털·이파리 등을 품은 호박을 “지구의 숨결을 품은 보석”이라고 소개했다. [최정동 기자]

“아프리카 어느 여인의 팔찌가 너무 아름다워 덥석 손목을 잡았다가 몰매 맞기 직전까지 간 적이 있죠. 인디오 장신구를 구하기 위해 낯선 밤길을 몇 시간씩 걷거나 내전 지역으로 잠입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요.”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한 장면 같은 이 위험천만한 일들의 주인공은 세계장신구박물관장 이강원(70)씨다. 이씨는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각양각색 장신구를 수집하며 겪은 이야기를 모아 여행 에세이 『장신구로 말하는 여자』를 냈다.
 
1971년 브라질에서 시작해 독일·에티오피아·미국·자메이카·코스타리카·컬럼비아를 거쳐 아르헨티나까지 이씨는 외교관인 남편 김승영(70)씨를 따라다니며 30년 간 아홉 개 나라에서 살았다.
 
“78년 내전으로 시끄러운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고원 노천시장에서 채소 파는 여인을 만났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와 그가 하고 있던 은 목걸이가 너무 아름답고 눈부셔서 여신이라도 만난 것 같았죠.”
 
바구니 속 채소를 다 팔아도 1달러가 채 안 돼 보였다. 이씨는 여인에게 100달러를 주면서 은 목걸이를 팔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결혼식 목걸이라며 절대 팔 수 없다는 거였다. 미련이 남았던 이씨는 결국 장신구의 신세계로 빠져들었다.
 
“전통 장신구에는 엄청난 인문학이 응축돼 있어요. 또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아트 상품이죠. 특히 파격적인 형태의 아프리카 장신구들을 보고 있으면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 오래된 것일수록 가장 현대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실감하게 되죠.”
 
2002년 남편의 은퇴와 함께 서울로 돌아온 이씨는 2004년 서울 삼청동에 세계장신구박물관을 열었다. 작지만 섬세한 구조의 3층짜리 건물엔 지난 30년 간 60여 개국을 여행하며 수집한 3000여 점의 장신구가 전시돼 있다. 이씨는 체계적이고 미학적인 안목을 갖기 위해 60세의 나이에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로 1년간 ‘르네상스 미술’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열정이다. 알고 보니 이씨는 영어·독일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에티오피아어 등 5개 국어를 한다. 틈틈이 독학으로 익혔다고 했다. 이씨의 언어 습득 비결은 매일 아침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신문과 책을 읽는 것.
 
2015년 세계장신구박물관은 미국의 유명 여행 잡지 콩데나스트 트래블러에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영국 왕실컬렉션과 함께 ‘죽기 전에 봐야 할 10대 보석 박물관’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외교관의 아내라는 특혜도 있었지만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주변 60개국을 여행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 바로 그 여행이 장신구 수집가의 길로 나를 인도했죠. 여행은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선택할 수 있는지 다양한 답을 갖고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에요. 나이는 중요치 않아요. 인생의 새로운 빛을 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떠나세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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