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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돈으로 일자리 생색 내겠다는 금속노조

중앙일보 2017.06.21 01:00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현대차그룹 노사가 2500억원씩 내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기금 5000억원을 함께 마련하자고 회사 측에 제안했다. 얼핏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보이지만 뜯어보면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 뺨치는 황당한 내용이다. 금속노조는 20일 서울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그룹 노사가 2500억원씩 출연해 총 5000억원 규모의 일자리연대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50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하면 정규직 1만2000명(초임 연봉 4000만원 기준)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재원 마련 방법이다. 노조가 출연한다는 2500억원은 노조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다. 금속노조가 진행 중인 소송에서 승소해 조합원이 돈을 받을 경우 그중 일부를 기금으로 갹출하겠다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2008년부터 현대·기아차 13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29건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으로 정한 기준 임금이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갖춘 상여금(보너스)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노조 주장대로 일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하던 법정수당(연월차·연장근로·휴일수당 등)도 재정산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월급 중에서 통상임금이 350만원(233시간 근무 시 시급 1만5000원)이라면 연차보상금은 시급의 8배인 12만원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소송을 통해 보너스 50만원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았다면 연차보상금(시급 1만7116원의 8배)도 13만7000원으로 상승한다. 이때 차액 1만7000원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이런 식으로 계산했을 때 현대차그룹 13개 계열사가 노조 조합원(9만2634명)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을 1인당 2100만~6600만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1인당 120만원을 사회연대기금으로 출연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산이 가능하려면 현재 진행 중인 모든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금속노조가 승소해야 한다. 그러나 13개 계열사 중 가장 많은 노조원(4만900여 명)이 속한 현대자동차를 대상으로 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금속노조는 1, 2심 모두 패소했다. 현대제철·현대로템 등 주력 계열사도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지금까지 패소한 전력이 없다. 현대위아·현대다이모스·현대비앤지스틸 등 3개사가 1심에서 패소했지만 3사 노조원은 총 1800명에 불과하다(2심 진행 중). 소송이 진행될수록 노조가 불리하다는 얘기다.
 
금속노조가 “노사 모두 비용 낭비가 심한 소송 대신 노사 합의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일자리연대기금까지 만들자”고 회사 측에 제안한 이유다.
 
또 금속노조가 승소하든, 노사가 합의하든 돈을 받는 이는 금속노조가 아니라 조합원이다. 일자리연대기금에 갹출하려면 조합원이 자신이 받을 돈을 내놓겠다는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아차노조는 올해 임금요구안을 확정할 때 내부 토론 끝에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에 대한 내용을 요구안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산 방식도 이상하다. 만약 13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모든 소송에서 승소해 전 노조원이 기금에 돈을 출연하겠다고 가정하자. 이렇게 9만2634명이 120만원씩 내놓는다면 1111억6080만원이 모인다. ‘노조가 2500억원을 모으겠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노조는 또 이와 별개로 ‘매년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통해 임금이 상승하면 여기서 100억원을 일자리연대기금에 출연하겠다’며 현대·기아차그룹도 100억원을 추가 적립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상 사측이 200억원을 매년 부담하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현재의 사회공헌기금과 마찬가지로 임단협에서 100억원의 출연금을 고려해 임금 인상을 협상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만약 금속노조가 임금 동결을 선언하거나 기존 평균인상률을 상한선으로 두는 등 부담을 나눠 지면서 사측에 일자리연대기금 조성 출연을 요구했다면 다소 진정성이 있었을 것”이라며 “양보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가상의 돈’을 출연하겠다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금속노조가 이처럼 무리한 요구안을 꺼내든 것은 노사협상에서 현대차그룹의 공동교섭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금속노조는 비슷한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의 노동자(산별노조)가 단체교섭을 한다. 하지만 업종이 비슷한 대·중소기업이 단일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하는 산별교섭은 노조원끼리도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기업 입장에서도 단체교섭에 반드시 응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 7월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조법에 의한 노동쟁의라고 볼 수 없다”고 단체교섭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행정지도를 내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산별교섭의 효과가 부족한 데다 단체교섭까지 불가능해지면서 입지가 좁아진 금속노조가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실현 불가능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꺼내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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