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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중국식 적폐 청산술

중앙일보 2017.06.20 02:53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지난 4월 25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 정치국 위원 25명이 모였다. 월례 정치국회의가 끝난 뒤 집단학습이 이어졌다. 주제는 금융 안보.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과 궈수칭(郭樹淸)·류스위(劉士余) 은행·증권 감독기구 수장이 강단에 섰다. 보험 분야는 천원후이(陳文徽) 보험감독위 부주석이 막 낙마한 샹쥔보(項俊波) 주석을 대신했다. 학습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발언으로 마무리됐다. “고위 간부는 금융 업무 능력을 제고하고 당의 금융 지도를 강화하라”는 등 6대 임무를 제시했다.
 
갑작스러운 금융 공부에 언론은 의아해했다. 의문은 지난주에 풀렸다. 2014년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을 2조2000억원에 인수하면서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의 거물로 떠오른 우샤오후이(吳小暉) 안방(安邦)보험 회장이 체포되면서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외손녀까지 세 차례 고위 관리의 딸과 결혼했던 혼(婚)테크 전문가 우 회장이 몰락했다. 집단학습은 금융계 적폐 청산의 신호탄이었다. 전조도 있었다. 1월 태자당의 자금 관리인인 샤오젠화(肖建華) 밍톈(明天)그룹 회장이 홍콩에서 사라졌다. 중화권 매체는 이들을 2015년 주가 폭락 연루자로 지목했다. 중산층의 이반을 노린 ‘경제 쿠데타’였다는 해석이다. 이제 창끝은 태자당 금융 마피아를 향하고 있다. 반란에서 진압까지 2년을 준비했다.
 
군 개혁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전횡을 일삼았던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부터 시작했다. 적폐 핵심인 궈보슝(郭伯雄) 전 부주석도 함께 공략했다. 군적·당적은 물론 상장(한국의 대장 격) 계급도 박탈했다. 이들을 체포하던 2014년 3월 심화 국방 개혁 영도 소조를 꾸렸다. 치밀한 개혁 청사진을 그렸다. 2015년 9월 천안문 열병식은 또 다른 신호였다. “30만 감군”은 혁명이었다. 12월 31일 제2포병을 로켓군으로 바꾸고 전략지원부대를 창설했다. 군사지도도 다시 그렸다. 7대 군구를 5대 전구(戰區)로 재편했다. 한국의 군단보다 규모가 큰 집단군 18개 중 5개를 해체했다. 올 4월에는 이름도 바꿨다. 1집단군을 72로 바꿨다. 군도 반발했다. 강제 전역당한 군인의 집단 시위가 이어졌다. 물론 개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적폐 청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차 당 대회 개막일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정치보고 3만여 자를 읽어 내려갔다. 시진핑 5년의 지침서였다. 연설이 끝날 무렵 후 주석은 “부패 반대, 깨끗한 정치 건설은 인민이 주시하는 중대한 정치 문제”라며 “이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심지어 당도 나라도 망할 수 있다”고 외쳤다. 시진핑 5년 군부에서 금융계로 이어진 적폐 청산은 권력투쟁이자 기득권 세력과의 전쟁이다.
 
전쟁은 전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성공하고 있다. 망당망국(亡黨亡國)의 절박함과 치밀함, 그리고 돌파력이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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