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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테에 쫓기는 태권도 … 도쿄올림픽 ‘마셜 아트’ 빅2 대결

중앙일보 2017.06.20 02:34
리우올림픽 기간 중 태권도 간판스타 이대훈(왼쪽)의 경기 모습. [사진 세계태권도연맹]

리우올림픽 기간 중 태권도 간판스타 이대훈(왼쪽)의 경기 모습. [사진 세계태권도연맹]

2020년 도쿄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뜬다. 올림픽 무대에서는 결코 만날 일이 없을 것만 같던 두 종목, 태권도(跆拳道)와 가라테(空手道·공수도). 정식 종목으로 나란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자존심을 건 경쟁을 펼친다. 마셜 아트(martial arts·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동양 무술의 통칭)의 글로벌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는 종목들인 만큼 올림픽 무대에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2013년 올림픽 핵심 종목(core sports)의 지위를 획득했던 태권도는 4년 만에 유사 종목 가라테의 도전을 받는 처지가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해 8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제129차 총회에서 ▶야구-소프트볼 ▶서핑 ▶스케이트보드 ▶클라이밍과 더불어 가라테를 2020 도쿄 올림픽에 한해 정식 종목으로 승인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대회조직위원회와 일본 정부의 오랜 물밑 노력이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IOC는 진행 방식과 규칙이 엇비슷한 종목군의 경우 그중 대표성을 갖는 단 한 개의 종목만 올림픽 무대에 도입한다. 태권도는 지금까지 유사 종목인 가라테·우슈 등을 제치고 올림픽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일본 정부와 올림픽위원회(JOC)는 가라테가 올림픽 무대에서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를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펴고 있다. 도쿄 올림픽 기간 태권도를 일반 다목적체육관에 배정한 것과 달리 가라테는 전 경기를 부도칸(武道館)에서 치르기로 했다. 부도칸은 스모·유도 등 일본인들이 국기(國技)로 여기는 종목의 경기 장소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부도칸에서 만원 관중의 뜨거운 호응 속에 가라테 경기를 진행해 IOC에 어필한다는 게 일본 측의 전략이다.
 
가라테 관계자들은 2020년에 이어 2024년 올림픽에도 가라테가 잔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4년 올림픽 개최권을 놓고 경쟁 중인 프랑스 파리와 미국 로스앤젤레스(LA)가 모두 가라테 보급률이 높은 도시들이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올림픽 핵심 종목이지만 2024년 올림픽에 앞서 재평가작업을 거쳐야 한다. 2024년에도 태권도와 가라테가 올림픽 무대에서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1억 명씩 수련생, 동반자 겸 경쟁자
 
태권도와 가라테는 한·일 양국의 역사적·문화적 특징을 따라 진화했다. 가라테는 일본 남부 오키나와 지방의 호신용 전통무술인 ‘오키나와테(沖繩手)’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태권도는 수박(手搏)·권법(拳法)·택견 등 한민족 역사와 함께 성장한 맨손무예의 정신과 동작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이와 관련해 양진방 세계태권도연맹(WTF) 사무국장은 “두 종목 모두 주먹과 발을 함께 쓰지만 기술을 다듬는 과정에서 태권도는 발차기, 가라테는 주먹공격 위주로 진화하며 특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1억 명씩의 수련자를 보유한 두 종목은 국제무대에서 동양 무도의 우수성을 알리는 동반자 겸 경쟁자 관계다.
 
태권도와 가라테는 1970년대에도 올림픽 종목 진입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당시엔 가라테가 수련인 규모와 국제사회 영향력에서 월등히 앞섰지만 가라테 관련 국제조직이 여러 개로 나뉘어 분열한 틈을 타 태권도인들이 WTF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승자가 됐다. 88년 서울 올림픽 시범 종목 채택을 계기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승격한 태권도는 이후 전자호구와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해 고질적인 판정 시비를 대폭 줄였다. 아울러 경기 규칙과 채점 기준을 여러 차례 개정하며 화려한 기술과 공격적인 경기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진화 중이다. 일각에서는 ‘올림픽 태권도가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혹평한다. 그러나 메달권에 근접한 선수들의 신중한 경기들이 주로 TV 전파를 타다 보니 빚어진 오해라는 게 태권도 관계자들의 항변이다. 지난해 리우 올림픽 기간 태권도는 전 세계 3억9000만 명이 TV로 지켜본 인기 콘텐트였다.
 
태권도 리우올림픽 좌석점유율 93%
 
조정원 WTF 총재는 “태권도의 올림픽 좌석 점유율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99.8%였고, 지난해 리우 대회도 93%로 매우 높았다” 고 설명했다. 이어 “리우 올림픽 기간 태권도 경기장을 방문한 토마스 바흐(독일) IOC 위원장이 당초 예정한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이 넘도록 경기를 지켜봤다”며 “바흐 위원장으로부터 ‘공격 위주의 화끈한 경기 진행이 인상적이었다. 태권도를 올림픽에 어울리는 스포츠로 발전시켜 줘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공수도(가라테) 여자국가대표 안태은(위), 임미성이 가라테 득점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공수도(가라테) 여자국가대표 안태은(위), 임미성이가라테 득점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장진영 기자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태권도는 또 한 번의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도쿄가 태권도의 불모지인 만큼 가라테와 직접적인 경쟁보다는 차별화에 주력하기로 했다. WTF는 ▶전자호구 디자인 개선 ▶컬러 도복 보급률 확대 ▶조명 및 음향효과 활용 등을 통해 태권도 경기의 몰입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기 규칙도 공격에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고쳤다. 몸통공격의 경우 주먹과 발 구분 없이 성공할 경우 1점씩 주던 기존 규정을 바꿔 발차기 몸통공격 배점을 2점으로 늘렸다. 방어 위주의 소극적인 경기 운영에 대해서는 경고 없이 곧바로 감점을 준다. 상대 공격 차단을 위해 한 발을 들고 플레이하는 이른바 ‘앞발들기’ 또한 3초 이상 지속할 경우 감점 대상이다.
 
WTF는 새로 도입한 경기 진행 방식과 점수 규정을 오는 22일 전북 무주에서 개막하는 세계태권도선수권에 적용해 점검한다. 양진방 사무국장은 "바뀐 방식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화끈한 난타전 위주로 경기 스타일이 바뀌면서 선수당 평균 득점이 20점 이상으로 늘었다"면서 "무주 세계선수권에서 기존의 랭킹 질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더 강하게 공격하는 선수가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조 총재는 "중장기적으로는 남녀혼성단체전, 품새 등 새로운 종목을 올림픽에 추가로 도입해 참가 대상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아울러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을 중심으로 저개발 국가 및 난민 캠프의 태권도 보급에 앞장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글로벌 무도로 인정받겠다"고 강조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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