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강찬호의 시시각각] 국민이 정한 5당체제 흔드는 음모

중앙일보 2017.05.19 03:01
강찬호논설위원

강찬호논설위원

“보수를 궤멸시켜 버리겠다”고 말한 이해찬에게 홍준표는 감사장이라도 줘야 한다. 격분한 보수층이 홍준표로 집결했기 때문이다. 안철수나 유승민에겐 직격탄이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이해찬의 ‘신의 한 수’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걸로 선거는 끝이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내내 홍준표 2위 도약에 스폰서 노릇을 했다. 안철수 대신 홍준표를 키워야 대선과 집권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양당제 대결정치 부활을 원하는 민주당의 속내는 문재인 정부 인사에서도 눈에 띈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죄다 호남 출신이다. 집권 뒤 첫 대통령비서실장을 경북 출신 김중권으로 쓴 김대중보다 훨씬 파격적인 친호남 행보다. 국민의당에 비상령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광주를 중심으로 ‘안철수색’ 옅은 초선 의원들에게 민주당이 러브콜을 보낸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국민의당은 겉으론 “민주당에 먹힐 가능성은 제로”라고 강조한다. “안철수 호남 득표율이 30%에 그친 건 홍준표 상승세에 놀란 호남 유권자들이 어쩔 수 없이 문재인에게 전략 투표한 것”이라며 “대선 득표율과 지역구 의원들 지지율은 다르다”며 자위도 한다. 하지만 인사와 예산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집권당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삼키려들지 국민의당은 걱정이 태산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위적 합당은 안 된다. 민심을 거스르는 구태일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두드러진 현상이 ‘소신 투표’다. 안철수나 유승민이 떨어질 줄 알면서도 “새 희망이 보여 찍었다”고 당당히 밝히는 사람이 많았다. 정권교체나 수호를 위해 단일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쑥 들어갔다. “문재인 후보의 압승을 위해 다시 한번만 사퇴해 달라”고 심상정에게 부탁한 민주당 지휘부는 “시대가 바뀐 지 언제인데 또 구걸이냐”는 비아냥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유권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지역주의도 퇴색했다. 안철수는 호남·영남·수도권 할 것 없이 전 지역에서 고루 20%의 지지율을 올렸다. 경제는 북유럽급 진보, 안보는 냉전형 철통보수라는 생소한 조합에다 대구·경북(TK)에서 ‘배신자’로 몰린 유승민조차 전국적으로 6% 넘는 지지율을 올렸다.
 
그럼에도 대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당은 국민의당에 대고 “뿌리가 같은 데다 무슨 이념적 차이가 있나”며 공공연히 ‘흡수 통일’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틀린 얘기다. 차이가 많다. 의원들 출신이 비슷할진 몰라도 지지층의 성향은 확실히 다르다. 북한을 무조건 감싸는 수구진보 대신 안보·인권을 중시하는 합리적 진보를 희구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당은 모처럼 등장한 대체재다.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다. 기득권에 목매는 수구보수 대신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개혁보수들에겐 의미가 각별한 존재다. 두 당의 득표율이 30%에 육박하는 건 기존 양당 구조에 신물을 내며 새 정당을 찾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 이걸 무시하고 힘으로 합당을 밀어붙인다면 우리 정치의 시계를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릴 뿐이다.
 
국회가 가장 높은 생산성을 발휘한 것도 다당제 시절인 1988년 13대 국회였다. 여당인 민정(125석)과 야당인 평민(70석)·민주(59석)·공화(35석)가 때로 협조하고 때로 경쟁했다. 그 결과 국회 첫해 통과된 법안이 140건에 달했다. 새누리(129석)·민주(122석)의 양당 지배구조에 국민의당(38석)이 힘겹게 파고든 20대 국회의 첫해 법안 가결률이 사실상 제로였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다. 수치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13대 국회 초반 2년은 성과가 컸다. 국정감사, 지방자치, 5공 청산 등 굵직한 개혁 조치들이 모두 합의로 통과됐다. 이런 실적은 “집권당의 독주 시대는 끝났다”며 다당제를 현실로 받아들인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결단에 크게 힘입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5당 체제를 인정하고 협치하는 것을 국정의 알파요 오메가로 삼아야 한다. 국민 열 사람 중 네 사람의 지지로 당선된 만큼 다른 대안은 없다. 
 
강찬호 논설위원
기자 정보
강찬호 강찬호 기자
소셜 계정을 활용하여 간편하게 로그인해보세요!

Innovation Lab

트렌드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