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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싸가지 없고 무능하다”는 오명 없애려고 사력 다했다

중앙일보 2017.05.19 01:00
민주당 원내대표 물러난 86 대표주자 우상호 의원 
지난 1년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은 국회 최전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성사시킨 야전사령관이다. 86그룹(60년대 출생, 80년대 학번)의 맏형 격인 그는 계파에 얽매이지 않는 중도적 처신으로 내분이 잦은 민주당의 균형을 잡고, 구여권과의 협상에서도 유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활약은 운동권 인상이 강했던 86그룹의 이미지 쇄신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평의원으로 돌아온 그를 17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 비박계를 설득해 탄핵 가결 정족수 200표를 확보하는 데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강정현 기자]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 비박계를 설득해 탄핵 가결 정족수 200표를 확보하는 데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강정현 기자]

문재인 정권에서 86그룹 정치인의 약진이 돋보인다.
“지난해 5월 원내대표에 출마하면서 우리 당과 86에 씌워진 ‘탄돌이’ 멍에를 벗겨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무능하고 불안한 패거리 정치꾼들’이란 오명을 극복하기 위해 1년 내내 유능하고 안정적인 이미지 심기에 전력했다. ‘박근혜 누드화’ 같은 문제가 터지면 즉각 해당 의원에게 카톡을 날려 사과하고 수습하게 했다. 그 결과가 이번의 약진이다.”
 
2012년 대선 뒤 ‘86그룹 해체’를 선언했는데.
“당시 대선에 졌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 친문들도 다 도망가더라. ‘우리라도 책임지자’는 생각에서 모임을 정리했다. 그때까지는 86그룹 의원 20여 명이 매달 만났다. 이슈가 있으면 성명서를 내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걸 다 접었다.”
 
굳이 해체까지 할 이유가 있었나.
“더 이상 ‘패거리 집단’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다. 사실 86은 하나가 아니다. 나 같은 무계파도 있고 정세균파도, 친문파도 있다. 하지만 86으로 묶이니까 당에 나쁜 일이 터지면 도매금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그 점에서도 해체가 옳았다.”
 
그 86들이 문재인 정부 핵심이 됐다.
“임종석만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송영길만 해도 입각하지 않고 당대표를 노리고 있으니 문재인 정부의 핵심은 아니다. 주목할 것은 임종석이다. 나는 문 대통령이 임종석을 정무수석으로 쓸 줄 알았는데 비서실장을 맡기는 걸 보고 놀랐다. 그만큼 신임하는 것 아니겠나. 실제 86 중 가장 많이 변한 이가 임종석이다. 단순 운동권 논리를 벗어나 우리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유능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30년 전 (전대협) 이력을 갖고 그의 발목을 잡는 자유한국당에 되묻고 싶다. 모든 이가 20대엔 혁명을 꿈꾸지만 50대엔 아니지 않나. 적어도 이석기 같은 사람을 빼면 정치권에서 좌우를 나누는 건 의미 없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에 비해 안정적인 느낌이다.
“경험의 힘이다. 10년 전 국정을 해보고, 실패도 맛봐 경륜이 몸에 밴 거다. 소통은 몸에 배지 않으면 못한다. 집권당 입장에선 대통령이 말실수 안 하고 이렇게 잘해 주면 일하기가 쉬워진다.”
 
유능·안정 이미지 심기 안간힘
86 중 임종석이 가장 유연·유능
이석기 빼면 좌우 구분 무의미
협치? 당·청 협조, 야당 배려가 열쇠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 비박계를 설득해 탄핵 가결 정족수 200표를 확보하는 데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강정현 기자]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 비박계를 설득해 탄핵 가결 정족수 200표를 확보하는 데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강정현 기자]

집권당 의석이 120석에 불과하다. 협치의 조건은?
“야당을 배려하는 양보의 미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나를 포함한 여야 원내대표들을 초청했는데 우리가 건의한 10여 건 중 들어준 게 하나도 없다. 자기 얘기만 하더라. 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노래일 뿐이니 제창하라는 한마디만 해달라고 했는데 그것조차 들어주지 않더라. 문재인 정부는 이러면 안 된다. 120석 갖고 독주하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정무수석과 여당이 사전에 야당의 요구 가운데 들어줄 수 있는 것을 정한 뒤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야당에 완패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국정을 공동으로 끌고 가야 협치가 된다. 3당 체제도 협치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5당 체제 아닌가. 당장 지난 1·2월 국회에서 아무것도 못했다.”
 
어려운 협치 대신 국민의당을 흡수해 편하게 가고픈 생각이 들 것 같다.
“난 대선 전부터 합당해야 한다고 봤다. 서로 갈라진 게 이념이 달라서가 아니지 않나. 공천·당직을 둘러싼 친문 패권주의 때문에 분당했다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다. 당장 원내대표부터 비문(우상호·우원식)이 연달아 맡았고, 문 대통령도 친문은 등용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이 통합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당은 합당하면 3년 뒤 총선에서 물갈이될 걸 우려한다.
“집권의 꿈을 이룬 문 대통령이 뭐하러 공천 학살을 하겠나? 국민의당은 (합당을)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바른정당과 통합하자는 당이 왜 뿌리가 같은 우리랑은 못하나.”
 
문 대통령이 민주당 인사만 쓴다는 원칙인데.
“문 대통령은 한 번도 다른 당 인물을 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임종석 실장한테 확인한 얘기다. 유승민 입각설 등은 (언론의) 추측일 뿐이다. 그런 건 야당 사람 빼내기지 발탁이 아니다. 야당의 반발로 국정만 표류한다.”
 
야권과의 연정은 어떻게 보나?
“연정을 하려면 대선 전에 (합의) 했어야 했다. 지금은 안 된다. 굳이 한다면 합당이 맞다.”
 
당의 내분이 심했는데 원내대표로서 조정을 잘했다는 평이다.
“우리 당 이미지가 ‘분열, 싸가지, 계파싸움’ 아니냐. 원내대표로서의 목표를 ‘균형과 조정’을 최우선으로 잡았다. 수권정당 이미지를 만들어 정권교체 초석을 닦기 위해서였다. 보니까 의원들 간에 너무 소통이 없더라. 끼리끼리만 대화했다. 그래서 친문, 비문, 안희정계, 박원순계 등 그룹별로 자주 만나 내 생각을 알려줬다. 몇 달을 계속하니 싸움질로 날을 세우던 의총이 평화롭게 끝나더라.”
 
주류들이 자기 쪽 편 들라고 압박하지 않던가?
“의원들이 바보가 아니다. 원내대표가 특정 계파와 거래하면 금방 안다. 일부 주류 그룹이 알짜 상임위 배치나 당직 중용을 부탁했지만 철저히 중립적 기준으로 인사했다. 그래서 임기 중 한 번도 분란이 없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놓고 당이 갈팡질팡했는데.
“나는 사드 반대다. 그러나 김종인 대표(당시)가 ‘한·미 동맹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 ‘그건 인정한다. 다만 딱 부러지게 찬성하진 말고 모호성을 유지하자’는 선에서 타협했다. 이어 사드 반대파 의원 40명을 모아 ‘수권정당이 되려면 당론으로 사드에 반대하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 그래도 반대하는 의원 20명이 성주로 달려가 반대 시위를 한 건 막지 않았다. 현실과 이념의 균형점을 찾은 것이다.”
 
집권당이 된 지금 사드에 대한 입장은 뭔가? 반대인가?
“(이미 사드가) 배치됐는데 반대가 무슨 의미 있겠나. 사드로 인한 한·중 불화의 본질은 감정 싸움이다. 우리의 일방적인 배치 결정으로 중국의 기분이 상한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친중파 실세 이해찬을 특사로 보내 분위기가 바뀌었다. 중국이 ‘이제 대우 좀 받네’라고 여길 것이다.”
 
반기문 완주했으면 위험했을 것
국민의당, 합당 거부할 이유 없어
연정? 철 지난 얘기 … 협치는 해야
이정현 단식, ‘최순실’ 덮기 의도 
 
사드 배치 철회나 국회 비준 가능성은?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배치 대가로 조 단위의 돈을 요구하면 당연히 비준 대상이다. (사드를 뺄 수도 있나) 지금 결정해선 안 된다. 사드 배치의 근본 원인인 북핵부터 풀고 생각할 일이다.”
 
지난해 10월 ‘최순실 태블릿PC’ 사태 이후 민주당의 대응이 시시각각 변했는데.
“사실 국감을 앞두고 최순실의 국정 농단 정보를 상당히 확보했다. 그래서 조응천·안민석 등 의원 5~6명이 국감에서 의혹을 터뜨려 흐름을 선도했다. 새누리당이 난리가 났다. 당시 이정현 대표가 단식한 건 최순실 게이트를 막기 위한 물타기용었을 것이다.”
 
궁지에 몰린 박 전 대통령이 거국내각 카드를 꺼냈지만 거부했다.
“우리는 거국내각이 아니라 대통령의 2선 후퇴가 먼저였다. 대통령 스스로 내치 권한을 국회 추천 총리에게 맡기면 탄핵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끝까지 2선 후퇴 얘기를 하지 않고 김병준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꼼수를 부렸다. 그래서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강공으로 전환했다. 새누리당 비박계도 그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더라. 탄핵은 박 전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김종인·손학규 총리 카드도 꺼냈는데 민주당이 경쟁자를 키워줄 일 있느냐는 생각에서 안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전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2선 후퇴만 약속하면 국회에서 총리를 정했을 텐데 그런 얘기를 하지 않으니 어떻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겠나. 오히려 나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욕을 들었다. 대통령을 당장 끌어내려야지 ‘2선 후퇴’가 말이 되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헌정 중단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광장이 할 일과 제도권 정당이 할 일은 따로 있다는 신념에서 자제를 호소했다.”
 
탄핵으로 민주당이 집권하고 새누리당은 분당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탄핵에만 집중했다. 나머지는 다 결과일 뿐이다. 사실 내게 가장 큰 걱정은 반기문이었다. 그가 완주했으면 문재인 후보와 20만 표를 놓고 초박빙 혈투를 벌였을 것이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에 책임이 없어 가장 위협적인 후보였다. (민주당 집권에) 위험했을 수도 있다.”
 
김종인 전 대표의 탈당은 어떻게 보나.
“개인 감정이나 대권 욕심 때문에 나갔을 분은 아니다. 더 큰 구상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진영에 없는 판단과 경륜이 있는 분이다.”
 
통일부 장관설이 돈다.
“입각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여당 지도부가 정권 초기에 입각하면 여당이 청와대 거수기로 비친다. (서울시장이나 당 대표 도전설도 도는데…) 당분간 쉴 것이다. 내가 시장 꿈이 있었다면 원내대표 하면서 휘하 요직에 서울 의원들을 대거 등용했을 것이다. 그러면 의원들이 금방 안다. 원내대표는 다음 자리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걸 철칙으로 삼았다.”
 
5당 체제가 얼마나 갈까?
“난 양당제를 선호한다. 합리적 진보정당과 개혁적 보수정당이 경쟁하는 구도가 가장 합리적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싸우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서로 무슨 이념적 차이가 있나. 결국 바람직한 모델은 우리 당이 국민의당과 합당하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되 (개혁보수인) 바른정당이 주도권을 쥐는 거다.” 
우상호 의원은 …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을 하면서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다. 200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해 3선 고지에 올랐다. 친화력 있고 합리적인 캐릭터에다 언변이 좋아 대변인만 8번 역임했다. 특정 계파에 얽매이지 않는 리버럴 성향. ▶강원도 철원(54) ▶연세대 국문과 ▶17, 19, 20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의장 비서실장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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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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