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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네 번 만에 찍은 대장경 ‘천 년의 숨결’

중앙일보 2017.04.22 01:00
고려대장경 발원 천 년을 기념하는
 
‘대장경 천 년 세계문화축전’이 있던 2011년의 일이다.
 
“딱 10분입니다.”
 
팔만대장경 보존 국장이 사진 촬영을 허가하며 내게 한 말이었다.
 
그냥 한 바퀴 둘러만 봐도 10분일 텐데 그 시간에
 
천 년의 숨결을 사진으로 담아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군말 못했다.
 
사실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출입조차 쉽지 않은 터니 사진 촬영 허가는 더 어려울 터다.
 
그런데 10분이나마 촬영 허가가 났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보존 국장의 인도 아래 장경판전에 들어섰다.
 
첫발을 들여놓자마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천 년의 숨결을 단 10분 이내에 사진으로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보존 국장에게 부탁했다.
 
“ ‘心’이 새겨진 경판을 한 장 찾아 주십시오.”
 
뒤에서 지켜보는 눈길의 부담을 피할 겸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리 부탁을 했다.
 
“그래도 공부는 좀 하고 오셨나 봅니다. 팔만대장경 5200만 자를 한 글자로 응축하면 결국 마음 심(心)이 됩니다. 찾아올 테니 얼른 사진 찍으세요. 딱 10분입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쫓겨나듯 떠밀려 나와서야 정신이 들었다.
 
천 년의 숨결을 느끼는 것은 고사하고 눈에 띄는 대로
 
셔터 누르기에 바빴음을 그제야 알았다.
 
보존 국장을 다시 찾아갔다.
 
“스님 한 번만 더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제가 무능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안 됩니다. 곧 다른 방송국에서 취재 올 겁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10분입니다.”
 
“그럼 스님 인터뷰 사진도 어차피 필요하니 방송 촬영 때 뒤에서 찍도록 해주십시오.”
 
어렵사리 허락을 구해 방송 촬영 팀을 따라 두 번째 들어섰다.
 
방송 카메라 뒤에서 인터뷰용 사진을 촬영했다.
 
방송 촬영도 여지없이 10분이었다.
 
다른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
 
또 떠밀려 나와야 했다.
 
그때부터 스님을 졸졸 따라다녔다.
 
보존 국장으로서 지켜야 하는 게 스님의 소임이었다.
 
기자로서 독자에게 천 년의 숨결을 전달해야 하는 것은 나의 소임이었다.
 
그러니 스님은 나를 피해 다니고 나는 스님을 따라다녔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방송 촬영팀이 왔다.
 
고려대장경 발원 천 년을 기념하는 문화축전이니 취재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 부탁하여 그들을 따라 또 들어섰다. 세 번째였다.
 
그때야 팔만대장경의 숨결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여지없이 10분 후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이때 들어오지도 못하고 바깥에서 기다리던 취재기자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대장경을 위에서 부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마침 세 번째 들어섰을 때 봐 둔 장소가 있었다.
 
다시 스님에게 조르듯 부탁했다.
 
“천 년의 숨결은 고사하고 10분의 숨결도 못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찍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딱 10분만 주십시오.”
 
“정말이죠? 그렇다면 그 사진을 우리 보존국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하십시오.”
 
그렇게 네 번째 장경판전에 들어섰다.
 
판가를 연결하는 나무 지지대 위에 올라섰다.
 
몸 기댈 곳 없는 데다 폭이 고작 20cm 정도였다.
 
내려다보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찔했다. 카메라를 잡은 손도 떨렸다.
 
떨리는 다리와 손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넓은 위 살창과 좁은 아래 살창으로 오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남쪽에서 들어와 대장경을 감돌고 북쪽 창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호흡하면서야 다리와 손이 진정되었다.
 
살창을 통해 넘나드는 빛과 바람, 바로 천 년의 숨결을 잇게 한 그것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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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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