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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시각각] 문재인이 보수의 마음을 사려면

중앙일보 2017.04.21 03:20
강찬호논설위원

강찬호논설위원

“문재인만은 찍지 않겠다”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북한’이란 답이 가장 많이 돌아온다. 문재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선지 베레모 쓴 특전사 시절 사진을 들고 다니며 목 놓아 ‘안보 대통령’을 외친다. 하지만 보수 유권자들은 문재인의 안보관에 깔린 근본 가치가 뭔지 두 눈 부릅뜨고 들여다본다. 문재인이 이 허들을 피해 가며 베레모 사진으로 변죽만 울린다면 보수층의 ‘문재인 포비아’를 결코 해소할 수 없다.
 
문재인은 그제 TV토론에서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는 유승민의 질문에 “국방부가 할 일이지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고 했다. 요즘 국방백서엔 ‘북한=주적’ 개념이 빠져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과 군에 대해선 분명히 ‘적’이라 못 박고 있다.
 
문재인이 군 통수권자가 되겠다면 적어도 “군사적으로 북한은 적”이라 분명히 말했어야 한다. 그런 다음 “동시에 대화 상대”라 덧붙였으면 끝날 일이다. “적이면서 파트너”란 개념은 박근혜도, 이명박도, 민주당 인사들도 다 했던 얘기다. 유독 문재인만 “내 입으로 적이라고는 말 못하겠다”니 보수층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적 개념을 폐기하려 했던 전력도 보수층의 불안을 부채질한다. 남재준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증언이다. “2004년 어느 날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불러 ‘정훈교육 할 때 주적이란 단어를 빼라’고 지시했다. 나는 ‘말이 되느냐’며 일축하고 정훈교육을 더 강화했다.”(주간조선 4월 10일자 남재준 인터뷰)
 
문재인은 그의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 간에 군사적 충돌이 단 한 건도 없었다”(184쪽)고 썼다. 그 시절 북한이 연평해전·목함지뢰 같은 재래식 도발을 하지 않은 건 맞다. 하지만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우리 안보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핵실험을 자행했다. 그런데도 문 후보는 북한의 가장 큰 도발이자 노무현 정부의 최대 안보 실패인 핵실험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잊어 먹어 빠뜨렸는지, 아니면 핵실험은 우리를 겨냥한 도발이 아니라고 생각해 뺐는지 궁금하다.
 
문 후보 측근들의 발언에서도 북핵에 대한 속내가 드러난다. 그의 선대위 간부는 최근 TV 토크쇼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진짜로 하면, 이는 김정은이 남한 대선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고 보수 정치 세력에 더 이로운 메시지를 주는 것이기에 저희로선 강력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핵실험 반대 사유로 국가 안보보다 ‘대선에 미칠 부작용’을 들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핵실험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위협하는 망동이라 단호히 반대한다”가 지지율 1위 후보 측이 해야 할 말이 아닌가?
 
노무현 정부 시절 한 차례 핵실험을 한 북한과 다섯 차례 핵실험을 거쳐 사실상 핵무장 국가가 된 지금의 북한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문 후보는 개성공단 확대·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햇볕 공약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북핵은 전쟁 아닌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는 그의 소신엔 공감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대북제재를 최고 수위로 끌어올리는 결기가 필요하다. 문재인이 그럴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는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을 막을 방안’에 대해 “북한에 핫라인으로 도발 중단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진보 정부니까 북한이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은 핵에 관한 한 민주당 편을 들어준 적이 없다. 오히려 반대다. 노무현 별세 이틀 뒤 김정일 명의로 조전을 발표한 지 4시간 만에 2차 핵실험을 자행해 애도 정국에 찬물을 끼얹는 등 민주당 욕보이기 선수가 북한이다.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제1야당 대표를 지낸 문재인이 나라 안보를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안보관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측면이 많다. 국민은 베레모 사진에 앞서 북한과 안보에 대한 문재인의 근본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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