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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뺨을 지켜줘, 검투사 뺨치는 야구 헬멧

중앙일보 2017.04.21 01:04
박용택

박용택

지난 2001년 프로야구 현대 심정수(42·은퇴)는 이상한 모양의 헬멧을 쓰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가 쓴 헬멧은 머리는 물론 왼쪽 뺨과 턱까지 가리고 있었다. 마치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쓰는 투구를 떠올리게 했다. 심정수가 이런 형태의 헬멧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해 투수가 던진 공에 얼굴 왼쪽을 맞아 광대뼈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당한 뒤다. 심정수는 부상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 헷멧에 플라스틱 덮개를 붙인 제품을 만들어 썼다.
 
심정수 이후 이런 헬멧을 쓰는 타자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올해는 박용택(38·LG)·최준석(34·롯데)·나지완(32·KIA)·최재원(27·LG) 등 4~5명의 선수가 ‘검투사’ 헬멧을 쓰고 나타났다.
 
최재원은 삼성에서 뛰었던 지난해 8월 장시환(당시 kt)의 공에 얼굴을 맞았다. 턱이 골절되는 바람에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LG로 이적한 그는 올 시즌 검투사 헬멧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선다. 최재원은 “얼굴에 공을 맞은 충격은 정말 컸다. (검투사 헬멧을 쓰면) 공을 두려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내 몸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이런 형태의 헬멧을 쓰는 선수가 꽤 많다. 미국에선 이런 헬멧을 ‘C-플랩(flap) 헬멧’이라고 부른다. 덮개가 C자 모양으로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잔카를로 스탠턴(28·마이애미 말린스)과 제이슨 헤이워드(28·시카고 컵스) 등이 얼굴을 얻어 맞은 뒤 C-플랩 헬멧을 사용했다.
공을 맞고 쓰러졌다고 모두가 검투사 헬멧을 쓰는 건 아니다. 조성환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롯데에서 뛰었던 2010년 투구에 머리를 맞았다. 어지럼증이 심각해 입원 치료까지 받았지만 검투사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다. 조 위원은 “그 헬멧을 쓰면 (내가 몸쪽 공에 공포를 느낀다고 생각한) 투수들이 몸쪽 공을 더 많이 던질 것 같았다.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두려움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이종범(은퇴)·조동찬(삼성)·김태완(넥센) 등도 같은 이유로 검투사 헬멧을 잠시 썼다가 벗었다.
김동욱

김동욱

그러나 최근엔 선수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부상 예방 및 경기력 향상을 위해 검투사 헬멧을 쓰는 선수들이 늘어난 것이다. 박용택은 얼굴에 공을 맞은 적은 없지만 얼굴 쪽으로 날아오는 아찔한 공에 대비하기 위해 특수 헬멧을 쓰고 있다. 박용택은 “최근 투수들의 몸쪽 공략이 많아졌다.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검투사 헬멧을 쓰기 시작한 최준석도 “덮개 때문에 시야가 가린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괜찮다. 오히려 집중이 잘 된다”고 말했다. 나지완은 지난해 말부터 검투사 헬멧을 쓴다. 그는 “내가 몸쪽 높은 공에 약한 편이기 때문에 투수들이 그 코스로 공을 많이 던진다”고 했다. 스탯티즈에 따르면 나지완의 몸쪽 높은 공 타율은 2015년 0.118, 2016년 0.154에 머물렀다. 올해는 이 코스의 공을 1개 때려서 안타로 만들었다. 나지완은 “검투사 헬멧 덕분에 몸쪽 공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실제로 써보니 방해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1920년 메이저리그에선 레이 채프먼이 상대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헬멧은 겁쟁이나 쓰는 것”이라며 헬멧 착용을 기피했다. 1941년 브루클린 다저스(현재 LA 다저스)가 처음으로 플라스틱 헬멧을 선수들에게 지급하면서 메이저리그 전 구단으로 확산됐다. 헬멧 착용이 의무화된 건 1971년이었다.
 
한국에서 뛴 적이 있는 마이크 쿨바는 2007년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1루코치로 나갔다가 타구를 맞고 사망했다. 이후 주루코치들도 의무적으로 헬멧을 착용하고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들도 헬멧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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