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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스쳐 지나는 순간(fleeting moment)"

중앙일보 2017.04.04 14:37
장편 『J. M. 배리 여성수영클럽』을 국내 출간한 바바라 지트워. 문학 에이전트에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장편 『J. M. 배리 여성수영클럽』을 국내 출간한 바바라 지트워. 문학 에이전트에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자신이 소개하는 한국소설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걸까.
 
한강, 신경숙의 소설을 해외 출판사에 판매해 주가를 높였던 미국인 문학 에이전트 바바라 지트워(51)가 이번에는 직접 쓴 장편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제목에서 아기자기한 느낌이 전해지는 『J. M. 배리 여성수영클럽』(북레시피)으로, 해피엔딩을 장착한 따뜻한 작품이다. 스코틀랜드인 J. M. 배리(1860∼1937)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한 『피터 팬』의 작가. 소설 제목에 배리의 '풀네임'을 집어넣은 지트워는 공간 배경, 인물들의 역할 등에서 『피터 팬』과 흡사한 느낌의 작품 구조 안에 여성들의 우정, 나이든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회심의 주제를 녹였다.
 
3일 기자간담회. 지트워는 "2007년 런던에 가 있을 때 뉴욕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급작스레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없어 친구와 함께 찾은 햄스테드 히스 공원에서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못에서 수영하는 여든셋, 아흔둘의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게 소설의 시작이었다"고 소개했다. 그 연못은 여성 전용 수영 장소였다. 불현듯 '여성수영클럽'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소설로 써보라고 권했다고 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화 시나리오 전공 석사를 한 지트워는 한때 '한국의 사위'였던 미국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영화 '뱀파이어와의 키스'를 제작한 적이 있다. 희곡도 썼다. 내러티브 제작에 익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소설 쓰기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작품 전개상 핵심적인 장면이나 순간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는 점이 영화와의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매혹적인 노인 캐릭터들을 어떻게 소설에 녹여내느냐도 고민거리였다"고 했다. 노인 복지 식의 식상한 주제로 흐르지 않기를 바랐다. 『피터 팬』의 요정 팅커벨처럼 마술적인 존재로 노인들을 그리려 하다 보니 고안한 방식이 언제나 같은 장소, 물론 여성만 출입할 수 있는 전용 야외 수영장(연못)에서 늘 수영을 즐기고, 그들을 만나려면 반드시 그 연못으로 가야 하는, 그래서 신비감이 살아 있도록 하는 설정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소설의 핵심 무대는 배리가 『피터 팬』을 실제로 집필했던 영국 남부 코츠월드의 스탠웨이 저택이다. 나이든 여성들의 전용 야외 수영장도 저택 부근에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지트워는 "할머니들을 소설에 어떻게 등장시켜야 할지 고민하는라 1년을 보냈다"고 했다. "실제 집필은 몇 달에 끝냈지만 구상 단계부터 따지면 소설을 완성하는데 5년 가량 걸렸다"고 말했다. 그가 해외에 중개하는 한국작가들의 빠듯한 창작 환경, 유무형의 압박 아래 1년에 한 편 정도는 찍어내야 하는 형편과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3일 오후 출간기념회에서 자신의 이름이 표시된 미니 햄버거를 들고 있는 모습.

3일 오후 출간기념회에서 자신의 이름이 표시된 미니 햄버거를 들고 있는 모습.



지트워의 소설은 고상한 예술은 아닐지 모르지만 방심한 상태에서 읽어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나름의 미덕을 갖춘 작품이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소설을 썼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성들 특유의 수다 장면이 생동감 넘치고, 무엇보다 소설 주인공인 30대 여성 조이(지트워는 뉴욕의 커리어 우먼인 자신의 아바타라고 했다)가 할머니들의 권유에 따라 얼음장 연못에 뛰어들었다 살아나는 모험 장면이 압권이다.


소설 판권이 10여 개국에 팔려 능력 있는 작가로 검증됐으니 이제 한국소설 소개는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지트워는 "더 바빠지겠지만 나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스쳐 지나는 순간(fleeting moment)"라고 발언해, 그걸 아는 걸 보니 진정한 예술가라고 치켜세우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오후 서울 잔다리로 신원에이전시 건물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신경숙·공지영·조경란·정유정·이정명 등 지트워가 해외 판권을 중개한 굵직한 작가들이 이례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덕담을 건냈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 진출 성공에 이어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받는 등 획기적 성과를 거두며 한국문학 해외진출 창구를 독점하다시피 하게 된 지트워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지트워는 "이번 주말 제주도에 가서 해녀를 만나볼 생각"이라고 했다. 여성과 수영, 그 조합이 있는 곳이어서 가고 싶다는 얘기였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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