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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풀잎

중앙일보 2017.03.21 03:03
풀잎
 -박성룡(1930~2002)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잎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버리거든요.
 
바야흐로 연둣빛 어린 잎들의 시간이다. 풀잎을 바라보는 시인의 사랑에 찬 따뜻한 시선이 어떤가. 게다가 ‘풀잎’이란 우리말 소리는 어쩌면 더도 덜도 아니게 꼭 풀잎다운가. 세상이 드셀수록 부드럽고 푸른 기운을 북돋워야 한다. 풀잎, 풀잎 하고 가만히 주문을 외어볼 일이다. 순하고 여린 기운이 풀물과 함께 우리에게 물들어오지 않겠는가. 박성룡은 사소한 존재들에 깃든 우주적 생명 같은 것과 온힘을 다해 눈을 맞추려 했던 시인. 1966년의 시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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