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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광동 진(陳)씨의 시름

중앙일보 2017.03.21 02:50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진(陳)씨의 내력은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나라를 멸한 무왕이 양자 규만(?灣)에게 허난성 동부를 내주고 제후국 진을 다스리게 했다. 600년간 이어지던 나라가 전국시대인 기원전 5세기 초나라에 병합되자 후손들은 진씨로 성을 바꿔 고향 땅을 기렸다.
 
나라는 망했지만 후손은 흥했다. 오늘날의 진씨는 중국에서 이(李)·왕(王)·장(張)·유(劉)씨에 이은 다섯째 대성이다. 광둥·푸젠·홍콩 등 중국 남서부 해안지역에선 가장 흔하다. 여기와 가까운 싱가포르와 대만에도 진씨가 제일 많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도 적지 않은 진씨가 있다. 현재 동남아시아 일대에 1억 명 이상이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진씨는 14만여 명이다. 대부분 송나라에서 우윤 벼슬을 하다 고려로 망명한 진수의 후손 진총후가 충남 홍성 장곡면 일대를 터전으로 일으킨 여양 진씨다. 진의종 전 총리, 진념 전 부총리,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이 그 후손이다. 본관이 다른 진씨들도 대개 중국을 기원으로 여긴다.
 
가장 최근에 터를 잡은 건 광동 진씨다. 정유재란(1597년) 때 조선을 돕기 위해 파견된 명나라 해군 도독 진린이 시조다. 청나라가 일어나면서 나라가 망하자 진린의 손자 영소가 조선으로 피신했다. 그가 고금도를 거쳐 정착한 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은 지금도 광동 진씨 집성촌이다. 최대 2400명으로 추산되는 후손 중 70여 명이 모여 산다. 마을 이름부터 ‘황제의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한 충신의 후예가 사는 곳’이란 뜻이다.
 
그래선지 후손들은 중국 ‘본가’와의 교류에 힘을 쏟아 왔다. 1994년 진린의 고향을 방문해 자매결연을 맺은 뒤 상호 방문을 이어 왔다. 2014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이순신과 진린의 특별한 인연을 언급했다. 이어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해남을 방문했다. 해남과 진도를 잇는 명량(울돌목)에서 벌어지는 축제에선 매년 한·중 양국의 후손들이 손을 잡아 왔다.
 
그런데 이런 교류에 복병이 등장했다. 사드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다. 다음달 14일 열리는 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에 중국 측 진씨들이 참석계획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순신과 진린 후손들의 400년 우정에도 금이 가게 생겼다. 중국의 무리한 보복조치와 한국의 무대책이 맞물린 결과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빨리 갈등이 해소돼 광동 진씨의 시름이 걷히길 빈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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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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