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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직격 인터뷰] “전직 대통령에게 칼날 휘두를 땐 금도를 지켜야 한다”

중앙일보 2017.03.21 01:00
검찰 소환 노태우 전 대통령 조사한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는 2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조사 후 벌어질 동정론과 처벌론 사이에서 검찰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문영호 변호사는 2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조사 후 벌어질 동정론과 처벌론 사이에서 검찰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오늘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입니다. 이 혼란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조사에 임해 주십시오.”(검찰)
 
“ 저도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조사에 임하겠습니다.”(피의자)


오늘 검찰에 출두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검찰 사이에 오간 대화라고 착각할 정도다. 사실은 1995년 11월 1일 노태우 전 대통령과 안강민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나눈 얘기였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의 검찰 소환조사가 있던 날이었다.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던 시절에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포토라인에 선 장면은 충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한 사람은 문영호 당시 중수2과장(현 변호사)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대검 11층 특별조사실에서 이튿날 새벽까지 16시간20분 동안 뇌물수수 혐의로 추궁을 당했다. 문 변호사(67)를 20일 만나 대통령 수사의 경험과 박 전 대통령 수사에 있어 검찰이 유념할 것들에 대해 들어봤다.
 
 
‘헌정 사상 최초’라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가 주는 압박감은 어떠했나.
“22년이 다 된 일이지만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다. 당시만 해도 군사정부 시절의 잔재가 있어 대통령의 일은 통치행위로 치부됐고, 재임 중 돈을 받았다 하더라도 통치자금의 범주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다. 노 전 대통령 수사 이전까지는 그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었고 검찰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통령직에 있던 분이 재임 중 받은 돈이 뇌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수사의 칼을 들이댄다는 게 엄청난 일이었다. 검찰 수사의 성역을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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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원수에 대한 예우 등 배려했나.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처신에 대해 실망과 분노가 들끓고 있다. 당시에도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에 4000억~5000억원의 뇌물을 거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며 가혹하게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의혹을 밝히되 예우에는 노력해야 한다는 게 수사팀의 원칙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대하는 것은 우리의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봤다.”


대통령 수사는 큰 압박감 동반
함부로 대하면 국격 떨어뜨려
관례상 ‘대통령님’ 호칭 적절
소환은 기싸움, 제3 장소 안 돼


 
문영호 변호사는 2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조사 후 벌어질 동정론과 처벌론 사이에서 검찰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문영호 변호사는 2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조사 후 벌어질 동정론과 처벌론 사이에서 검찰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제3의 장소가 아닌 검찰청사에 불러 조사하는 이유는.
“수사는 검사와 조사 대상자가 벌이는 기싸움이다. 그런 기싸움에서 검사가 상대를 누르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기싸움을 위해서는 조사실의 분위기가 아주 중요하다. 노련한 검사는 조사실의 조명을 어떻게 할지, 상대를 창문을 마주보게 할지 아니면 등지게 앉힐지까지도 신경을 쓴다. 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는 아무래도 검사가 불리해진다. 신문 과정에 이런저런 변명을 댈 경우 신속한 자료 검색, 주변 사실관계 확인 등 지원을 받아야 한다. 제3의 장소에선 원활한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파면 이전에 청와대 경내 등 제3의 장소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면 겉모양만 갖춘 조사가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날(1995년 11월 16일)의 소회는.
“소환 조사 후 뇌물 액수가 1000억원을 넘어설 시점에 이르러 구속 또는 불구속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가 왔다. 당시 검찰총장 주재로 수사팀 핵심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는데 모두 구속을 주장했다. 76년 7월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50억원(5억 엔) 정도의 뇌물을 받은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됐으니 노 전 대통령의 구속도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나는 금액만으로 단순 비교하기보다 뇌물 중 사적인 용도에 쓴 부분을 보고 판단하자고 했다. 추적 결과 빌딩과 주거용 빌라, 아파트 몇 채를 구입하는 데 300여억원을 쓴 사실을 밝혀냈고, 구속 방침을 확정했다.”


 
조사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동정심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
“노 전 대통령의 첫 조사 때 가족이 준비한 도시락을 드시도록 허용했다. 그런데 도시락 보자기에 끼워져 들어온 메모 쪽지를 전달받았던 거다. 그런 쪽지는 공범과 입맞춤을 시도하는 일에 종종 쓰였기 때문에 내용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색을 하고 ‘호주머니에 넣은 쪽지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으나 선뜻 내놓지 않았다. 1분 이상 기싸움을 벌인 끝에 쪽지를 넘겨받아 내용을 보니 ‘아버지 힘내세요’라고 쓴 내용인데 아들 노재헌씨가 보낸 메모였다. 한없이 비정해지지 않을 수 없는 직업이 검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 ”
 
 
압수수색를 요구한 목소리가 있던 걸로 알고 있다.
“기소 시점이 다가오자 연희동 사저에 대한 압수수색을 왜 하지 않느냐고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수사팀 회의에서 성과가 없더라도 압수수색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반대했다. 계좌 추적으로 본인이 숨겨둔 돈이 4000억원이 넘는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중 뇌물 2800여억원에 대해 기소하는 마당에 압수수색은 의미가 없다고 봤다. 만약 고가의 패물이 나오거나 외국 원수들로부터 받은 선물 몇 점 등이 나오게 되면 쓸데없는 가십거리만 생길 뿐 큰 줄기에는 의미가 없었다. 수사는 무서운 칼날이다. 무서운 칼날을 휘두를 때는 금도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권력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엄격한 수사를 고집하다 자칫 잘못해 망신 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된다.”
 
 
수사하는 입장에서 전직과 현직 대통령 신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다. 현직은 소추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만큼 그런 한계를 안고 수사하기 때문에 혐의를 다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사에서는 조사 대상자 외의 관련된 주변인이나 참고인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현직 대통령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진술할 리 있겠는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호칭 등 예우에 대한 논란이 있다.
“막상 조사하는 검사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문제다. 마주보고 신문할 때는 호칭을 부를 필요가 없고, 조서상에는 그냥 피의자로 올라간다. 우리가 통상 사회생활에서 장관을 지낸 분을 ‘장관님’이라고 호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꼭 부를 필요가 있을 때는 ‘대통령님’이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 분위기가 험악했고 조사자들이 사납게 달려들어 벌어진 잡음 때문에 호칭에 대해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비극으로 끝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 조사는 무엇이 잘못 됐나.
“ 조사받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소환 조사 후 신병 처리에 대한 결론을 신속히 내리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끈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수사 책임자들이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라면 영향을 받지 않을까.
“헌재 결정 때 봤겠지만 누가 임명하고 추천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사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때로 비정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임명이나 추천과 상관없이 죄를 단죄하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이 법조인이다. 현 수사팀도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등과의 대질이 필요하다고 보나.
“대질 조사가 수사 기법상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부하나 신뢰가 돈독했던 사람의 경우 대질당하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압박 수단은 되겠지만 이번 수사에서는 적절치 않다. 며칠 전까지 대통령이던 분을 대질까지 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지나치다. 부인하는 답변을 번복시키기 위해 무리하기보다 다른 증거로 입증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이 시인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듯한 태도는 곤란하다.”


 
13가지나 되는 복잡한 혐의를 모두 구증해야 하는가.
“기소 여부 판단을 위해서라도 13개 혐의에 대해 모두 다뤄야 한다. 기소 때 어떤 혐의를 왜 포함시키지 않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으려면 다 조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객관적인 증거가 많은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안종범 전 수석의 메모 자료나 정호성 전 비서관의 업무 지시 녹음 자료가 있지 않은가.”
 
 
1차 검찰 특수본 수사와 특별검사 수사에 대한 평가는.
“1차 특수본 수사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수사해야 할지를 설정한 점은 평가해야 한다. 현직 대통령이 형사소추가 가능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특검은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성과를 냈다고 평가하고 싶다. 사실 이런 수사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는 공판을 거쳐 유죄 확정이 된 후에야 가능하다고 본다. 공판이라는 게 수사가 잘됐는지, 그 과정에서 절차상 무리는 없었는지에 관해 검증 받는 절차다. 아무리 구속자가 많고 거창한 혐의가 적용돼 기소가 되더라도 재판에서 중요 부분이 무죄가 된다면 실패한 수사에 불과하다.”
 
대질신문 추진 실효성 의문
동정론·처벌론 정답은 없어
정치에 휘둘리면 신뢰 해쳐
칼로 찌르되 비틀진 말아야 
 
 
문영호 변호사는 2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조사 후 벌어질 동정론과 처벌론 사이에서 검찰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문영호 변호사는 2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조사 후 벌어질 동정론과 처벌론 사이에서 검찰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신병 처리에서 동정론과 처벌론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하는가.
“검사들이 하는 업무 중 가장 의견이 많이 갈리고 정답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이슈가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5·9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며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 주장을 달리하고 있다. 수사팀으로서는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는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고 믿는다.”
 
 
수사가 정치 논쟁에 휩싸일 염려가 있다.
“헌재 탄핵과 대선 정국이 맞물려 있어 검찰로서는 굉장히 ‘불운한’ 수사다. 전직 대통령의 범법행위를 수사하는 것은 형사사건임에 틀림없지만 정치적 성격이 강한 수사다.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사건일수록 이를 단죄하는 입장에선 정치색을 털어내고 형사사건으로서의 뼈대를 확실히 하는 데 혼신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쟁의 빌미가 돼 이리저리 떠밀리게 되고 신뢰를 잃는다. ‘정치의 사법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지 않은가. 정치적으로 해결할 사안을 검찰에 떠넘겨 버리는 경우 검찰이 살아남기 위해선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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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찌르되 비틀지 말라’는 수사 원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백번 옳은 말이지만 현실적으론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본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큰 줄기에 집중하고 소소한 가닥을 털어내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검찰의 신뢰 회복 방안은.
“검찰의 신뢰가 워낙 많이 떨어지다 보니 단기간에 이를 회복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1차 특수본에서 시동을 건 이번 수사를 2차 특수본이 잘 마무리한 걸로 평가받게 되면 신뢰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검찰의 권한 행사를 줄이고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검찰권이 너무 비대해졌다고 비난받게 된 것은 검찰이 경찰을 제치고 직접 수사에 나서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중요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신병 처리나 기소 여부 결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폭을 더 넓혀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문영호는 …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8년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검 중앙수사부 1·2과장과 서울지검 특수 1·2부장,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거쳐 창원·부산지검 검사장을 역임했다. 2007년 수원지검 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뒤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글=고대훈 논설위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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