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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네피림이었던 수리와 폴리페서의 공통점은

중앙일보 2017.03.20 17:27
일러스트=임수연

일러스트=임수연

 
판게아-롱고롱고의 노래 77화 'E 12.5 N17.5'

1313W 행성 치료실에 누워있는 수리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수리가 네피림이던 시절이었다. 수리는 네피림 종족 중에서도 유독 키와 덩치가 작았다.네피림은 그런 그를 외면했다. 자신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수리를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친구도 없이 외톨이로 자란 수리에겐 꿈이 하나 있었다. 테라쎄 별에 사는 요정을 만나는 것. 그의 간절한 바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졌다.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우주 방랑자 외로운 빨간 외투가 수리에게 책 한 권을 주면서부터다. 테라쎄라 불리는 이 책은 오래된 깊은 우물, 즉 레뮤리아 우물에 묻어둔 책이라고 했다. 수많은 블랙홀 중 하나인 레뮤리아에 책 테라쎄가 숨겨져 있다는 의미였다. 외로운 빨간 외투는 책을 찾기 위해 우주의 모든 블랙홀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빅뱅 폭발 3만년 뒤 테라쎄 별 근처에 있는 레뮤리아에서 이 책을 찾았다. 
테라쎄는 생명의 진리서였다. 네피림도 찾지 못한 이 책을 외로운 빨간 외투가 수리에게 내밀었다.
“왜 저한테 이 책을 주는 거예요?”
책을 받기 전 수리가 물었다.
“너는 네피림의 돌연변이야. 우주의 모든 생명은 돌연변이에서 진화했어. 너는 ‘진화의 폭발점’을 갖고 태어난 아이다. 물론 어떻게 진화했는진 나도 몰라. 하지만 이 책은 생명의 진리서다. 이 책의 진리가 너의 돌연변이 특성과 일치한다면, 너는 완벽한 생명체로 태어날 것이다.”
외로운 빨간 외투가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네피림들은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할 거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지능이 높고, 전 우주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존재지. 그래서 너를 불완전한 생명체라고 생각할거다. 그들에 비하면 너의 지능은 턱없이 부족하거든. 외모도 상대적으로 볼품없고.”
“제가 받아도 되는 책인지 확신이 안 들어요. 힘들게 찾으셨잖아요?”
수리는 부담스러웠다.
“난 처음부터 네피림과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우주 방랑자 된 건지도 몰라. 고도의 지능을 가져야만 생명체로서 가치있다는 그들의 말에 의문이 들었거든.“
외로운 빨간 외투는 진지했다.
“그렇다면 생명체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죠?”
수리가 물었다.
“자 봐라. 우리 행성을 보란 말이야. 어두운 산맥·들판·강·바다 그리고 안이 보이지 않는 스페이스 셔틀과 스페이스 벙커들. 저 높이 좀 봐. 꼭대기가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지?”
외로운 빨간 외투의 말에 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하니?”
수리는 당황했다. 스스로에게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당장 대답하기 어려웠다.
“행복하니?”
외로운 빨간 외투가 다시 물었다. 수리는 고개를 저었다. 강하게 저었다.
“행복하지 않아요. 나는 저들과 다르게 태어났어요. 나는 사랑 받지 못했고 버려졌어요.”
수리가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외로운 빨간 외투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깟 외모와 지능 때문인 거예요? 그게 행복의 기준인가요? 그런 이유 때문에 버려졌다면, 전 정말 행복하지 않아요.”
“네피림은 거의 똑같은 외모로 태어났지. 유전자가 그렇게 세팅되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너 같은 아이가 태어난 거야. 그들은 당황했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 난 그들을 이해해.”
외로운 빨간 외투도 네피림과 같은 종족이어서 그런지 네피림에게 호의적이었다.
“네. 버려질 만 하네요. 한 번도 나 같은 아이가 태어난 적이 없었다니까.”
수리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전에 한 번 있긴 했지.”
외로운 빨간 외투가 의외의 말을 했다.
“한 번도 없었다면서요? 제가 처음이라고 했잖아요? 그게 누구죠?”
수리가 다그쳐 물었다.
“폴리페서라는 자였어.”
“폴리페서?”
수리는 전혀 모르는 자였다.
“그는 네피림이나 너와는 달랐어. 그의 외모는 네피림과 똑같았지만 지능은 네피림에 비해 낮았다. 또 너와 공통점도 있었지. ”
외로운 빨간 외투의 말이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그게 뭐죠? 공통점이라뇨? 대체 뭐죠?”
“바로 눈물이야.”
수리는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눈물이 대체 뭐길래 네피림과 다르게 진화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폴리페서는 자신이 슬프거나 힘들 때 눈물을 흘린다는 걸 깨달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하얀 고글을 썼어. 네피림에게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버려지기 싫었던 거야.”
외로운 빨간 외투는 하얀 고글을 쓴 폴리페서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주었다. 수리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숨이 막혔다.
“결국 그는 대부분의 시력을 잃었지. 멀리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볼 수 있게 됐어. 어쨌든 그도 버려졌다. 그런데 그는 너처럼 절망만 하고 있지 않았어. 그는 움직였어.”
외로운 빨간 외투의 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요?”
“그의 외모와 똑같은 기계 노예인 누이들을 데리고 반란군이 됐지. 그리고 온 우주를 돌아다니며 자신과 뜻을 같이할 군사를 모았지. 그는 매우 정치적이었어. 그는 우두머리가 되어 네피림의 씨를 말리려고 했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새로운 행성에서 새 종족을 만들면 되잖아요?”
수리는 의아했다.
“그렇지 않아. 그는 네피림이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어. 오히려 네피림보다 자신이 훨씬 우월하다고 여겼지. 그래서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종족이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위험하기도 했지만 혁명적이었지.”
외로운 빨간 외투의 말투에서 폴리페서를 향한 호의가 느껴졌다.
“그런데 폴리페서와 저는 왜 돌연변이로 태어난 거죠?”
수리는 진짜 궁금했다. 외로운 빨간 외투가 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다마. 붉은흙 유전자지.”
“붉은흙이라는 건 본 적도 없는데요? 보세요. 우리 행성을 보라고요. 붉은흙은 어디에도 없어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시커먼 산과 들, 강과 바다를 보고 자랐어요. 붉은흙이라뇨? 말도 안돼요. ”
수리가 반발하자 외로운 빨간 외투는 다시 홀로그램으로 아다마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게. 뭐…어떻게….”
수리는 말을 더듬거렸다.
“네피림은 기계 노예들을 만들 때 이 아다마를 이용했어.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많은 양의 아다마가 폴리페서와 너에게 간 거야.”
수리는 잔뜩 긴장한 채 외로운 빨간 외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결과는 서로 달랐어. 둘 모두 눈물은 흘렸지만 폴리페서에겐 잔인함이 생겼어. 너에게 잔인함은 없었지. ”
외로운 빨간 외투는 잔인함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잔인함.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잔인함이 뭐죠?”
수리가 물었다. 
“거짓말 하거나 해치거나 죽이거나 버리거나. 너를 버린 것도 어쩌면 잔인함의 일종이지.”
“네? 잔인해요. 맞아요. 그런데 죽인다는 것은 더 잔인해요.”
수리는 충격이었다. 네피림에게 죽인다는 것은 없었다. 평화로운 종족이었다.
“그리고 진짜 더 중요한 건 너의 머릿속에 그 아다마가 완전한 상태로 그대로 들어있다는 것이야.”
수리는 머리를 만져보았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 우주의 모든 자들과 폴리페서가 너를 추적할거야. 너는 위험해질 거다.”
외로운 빨간 외투는 수리에게 조심하라고 했다.
“어디로 도망가야 하죠?”
수리는 당장 떠나야할 것만 같았다.
“도망가도 소용없어. 어차피 네피림의 눈은 팬옵티콘이다. 네가 어딜 가든 다 알 수 있지.”
수리는 점점 실망했다.
“폴리페서는요?”
“그는 팬옵티콘은 아니지만 카메라아이를 갖고 있지. 하얀 고글이 카메라아이다.”
수리는 혼란스러웠다.
“제가 제 머릿속에서 아다마를 꺼내서 우주에 버릴까요?”
“소용없어. 아다마는 사라지지 않아. 너는 너의 종족을 만들게 될 거다. 책 테라쎄를 잘 들여다보아라.”
외로운 빨간 외투는 수리에게 준엄하게 명령했다.
“제가 어떻게….”
“자, 이걸 타고 떠나라. 그리고 이 좌표를 입력해라.”
E 12.5 N17.5
“수리, 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록해라.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를 책 테라쎄에도 기록해라.”
수리는 난감했다.
“저는 글자를 몰라요. 네피림은 글자가 없어요.”
“네가 이미 쓰고 있잖니?”
외로운 빨간 외투의 말에 수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의 모든 공간에는 외로운 빨간 외투와의 대화 내용이 그려져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끄적였던 것이다.
떠나려는 외로운 빨간 외투에게 수리는 소리쳤다.
“내가 또 버려지면요? 죽을 수도 있잖아요? 날 지켜줘요.”
“넌 버려지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난 널 영원히 지킬 거야.”
외로운 빨간 외투는 수리를 안심시켰다.
“그럼 떠나지 말아요.”
수리는 간절했다.
“난 떠나지 않아. 절대.”
“벌써 떠났잖아요?”
외로운 빨간 외투가 눈앞에 보이지 않자 수리는 사방을 뛰어다니며 그의 모습을 찾았다.
“자 봐라.”
그때 한 마리 나비가 팔랑거렸다. 여자의 얼굴을 한 나비였다.
“난 나비가 되어 널 지킬 거다. 나비는 말을 못하지만 네가 모든 일을 완수하면 노래를 할 거야. 그때 나는 진짜 떠날 거다. 네 주변에 나비들이 있다면 안심해도 돼.”
그는 그렇게 떠났고 노란 나비 9마리와 흰나비 6마리, 그리고 우주비행체만 남았다.
수리는 노란나비 9마리와 흰나비 6마리와 함께 우주선에 올랐다. 그리고 좌표를 입력했다.
E 12.5 N17.5
 
하지윤 작가

하지윤 작가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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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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