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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나비의 여행

중앙일보 2017.03.20 03:10
나비의 여행 
정한모(1923~91)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으다가
깜깜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부딪히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 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히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누가 젖먹이들의 곤한 잠을 다시 소스라치게 하는가. 저 아가들을 두고 그 어떤 명분도 평화에 우선할 수 없다. 평양의 아가들, 후쿠시마와 시리아의 아가들인들 다르겠는가. 한반도 주민들의 나날의 삶은 안중에 없어 보이는 미국·중국도 믿을 수 없지만, 자신의 운명이 남의 손에서 헐값에 거래되도록 상황을 끌고 오는 남북 우리 자신의 무능과 졸렬한 정치적 상상력을 통탄한다. 시인은 1988년 문공부 장관 시절 납·월북 문학 해금을 단행했다. 지용·백석의 시들을 40년 만에 다시 읽게 된 것이다. 그의 안목과 자신감이 기여한 바 컸다. 60년대 중반의 시.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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