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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국경조정세, 미국 수출 늘릴 것 vs 수입가격 올라 소비자 피해

중앙일보 2017.03.20 01:07
미국 경제학자 가상대담 
지금 미국은 세금제도를 완전히 바꾸려고 한다. 모든 수입품에 20%의 세금을 매기고, 모든 수출품에는 20%의 보조금을 준다는 획기적인 내용이다. 이른바 ‘국경조정세(Border Adjustment Tax)’ 신설이다. 이대로라면 기업이 같은 매출을 올리더라도 세후 수익이 수출기업은 크게 늘고, 수입기업은 쪼그라든다. 더 큰 문제는 이 세금이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이유다.
 
마틴 펠드스타인(左), 누리엘 루비니(右)

마틴 펠드스타인(左), 누리엘 루비니(右)

도대체 미국은 왜 국경조정세를 도입하려는 걸까. 어떤 효과가 있고 어떤 문제를 낳을까. 국경조정세에 찬성하는 마틴 펠드스타인(78) 하버드대 석좌교수와 반대하는 누리엘 루비니(58) 뉴욕대 교수 간 가상대담 형식으로 쟁점들을 따져 봤다. 펠드스타인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국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장을 지낸 미국의 경제 석학이고, 루비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해 ‘닥터 둠’으로 잘 알려져 있다.
 
① 미국 수입기업과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
▶루비니=이건 아무리 봐도 나쁜 세금이다. 물건을 수입하는 기업들에 높은 세금으로 벌을 주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월마트·이케아·베스트바이 같은 소매기업들이 저렇게 반대하는 것 아닌가.

▶펠드스타인=아니지. 오히려 현재 35%인 미국 법인세를 20%로 깎아 주겠다는 거다. 한국만 해도 법인세율이 평균 24.2%인데 미국은 너무 높지 않나. 게다가 지금 미국 법을 보라. 세금 기준을 ‘제품을 만든 장소(생산지 기준)’로 하다 보니 A기업이 미국에서 물건을 만들어 수출해도 미국 내 판매용과 동일한 법인세가 적용된다. 해외로 건너가면? 또 그 나라 부가가치세를 적용받는다. 이건 명백히 미국 기업에 불평등한 이중과세다.
 
▶루비니= 그래서 수출기업과 수입기업을 차별하겠다고? 옆의 표를 보라. 국경조정세가 생기면 수출기업은 세후 수익이 3000원으로 훌쩍 뛰고, 수입기업은 1400원으로 준다. 결국 소매판매업자나 수입업자는 판매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미국 소비자,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이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펠드스타인=오, 그건 걱정하지 말라. 국경조정세가 달러 가치를 올려 적절히 마사지를 해 줄 거다. 우리 둘 다 경제학자이지만 주요 연구기관에 따르면 국경조정세가 도입되면 달러화 가치는 약 25% 상승하게 된다. 어떻게? 국경조정세로 수입가격이 오르고 수출가격이 내려가게 되면 미국 내 수입은 줄고 수출은 증가하게 된다. 그러면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줄어 달러 가치가 오르게 되는 거다. 자, 이제 달러가 25% 세졌으니 수입업자는 원래 100달러였던 수입비용이 80달러로 줄 것 아닌가(100달러÷1.25). 세금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루비니=환율이라는 게 무역 거래만으로 결정되나? 환율은 금융·정치 등 다양한 요인이 반영된 국제 환율시장에서 결정된다. 단적으로 국제 외환시장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달러가 4조 달러(약 4500조원)로 무역거래액의 300배가 넘는다. 교수님 말씀대로 달러가 쑥쑥 올라 준다고 치자. 달러가 강해지면 한국 같은 해외 국가들이 갖고 있는 달러 부채 부담이 커진다. 신흥국들의 신용이 흔들려 금융시장까지 요동칠 수 있다.
 
② 미국 기업과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펠드스타인=교수님은 별명처럼 단점만 보는 것 같다. 난 그걸 ‘착각에 불과한 흠결(illusory flaws)’ 잡기라고 부르고 싶다. 국경조정세에 대한 우려는 모두 가정이지만 장점은 확실하다. 당장 수출을 촉진하고 수입을 억제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루비니=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 달러 가치가 오르면 장기적으로는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교수님 주장과 모순되지 않나. 게다가 미국 기업은 수십 년 동안 해외에 공장을 짓고 물류센터 등을 운영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 왔다. 해외 자산은 대부분 그 나라 통화로 돼 있기 때문에 달러가 오르면 미국 기업들의 해외 자산 가치는 수조 달러 감소할 수 있다. 이게 과연 미국 기업에 도움이 되는 걸까?
 
▶펠드스타인= 그동안 그렇게 해외로 나가기만 했던 기업들을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것 아닌가. 높은 법인세를 피해 해외로 본사를 옮긴 미국 기업이 얼마나 많나. 재정적으로도 미국 경제에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수입품에 20%의 세금을 물리면 연간 1000억 달러(약 115조원), 10년이면 1조 달러(약 1100조원)를 얻게 된다. 법인세를 내려도 세입은 늘어난다니 얼마나 묘수인가.
 
▶루비니= 그 세금을 누가 내나. 미국의 수입기업이?
 
자료:미국 공화당

자료:미국 공화당

▶펠드스타인=아니라니까. 아까 말한 대로 미국 수입기업의 부담은 달러 강세로 사라지고, 대신 미국으로 물건을 파는 외국 수출업자들이 국경조정세 비용을 떠안는 거다. 예를 들어 ‘1유로=1달러’일 때 미국에 100유로로 제품을 파는 프랑스 회사가 100달러를 받는다고 하자. 달러 가치가 25% 오르면 프랑스 회사는 80달러만 받게 된다. 이렇게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20%를 덜 벌게 되는 구조다. 결론은 국경조정세가 미국 소비자나 기업인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③ 국제 무역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
▶루비니=말씀 잘하셨다. 모든 손해를 외국 기업이 떠안는다면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을까? 지난주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경조정을 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 ”고 반발하지 않았나. 세계무역기구(WTO)가 즉각 징계에 나설 거다.
 
자료:미국 공화당

자료:미국 공화당

▶펠드스타인=무슨 근거로 징계를 하나. 국경조정세는 부가가치세(VAT)나 마찬가지다. 둘 다 물건이 생산된 장소가 아니라 ‘소비된 장소’를 기준으로 하는 ‘소비지 기준’ 과세다. 외국 화장품이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 정부가 부가가치세를 매겨서 팔지 않나. 부가가치세는 세계 150여 개국이 도입한 보편적 세제다. 지금까지 미국이 피해를 보고 있던 것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라는 얘기다.
 
▶루비니=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부가가치세는 최종 소비재에만 과세를 하는 간접세이지만 국경조정세는 기업의 직접적 이윤에 부과하는 직접세다. WTO는 직접세의 국경조정은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이 국경조정세를 폐지하지 않으면 연간 4000억 달러에 이르는 보복조치에 직면하고 이는 미국과 글로벌 경제성장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수 있다. 
 
◆국경조정=국가 간 교역 시 세금 조건을 균등하게 하기 위한 조정. 수출품에는 국내에서 부과되는 세금을 면제해 주고, 수입품에는 동종의 국산품에 부과되는 세금을 부과한다.
 
◆직접세=납세의무자와 세금 내는 주체가 같은 세금. 소득세·재산세·법인세·상속세 등으로 고소득자 부담이 크지만 간접세처럼 가격에 세금이 책정돼 있지 않아 탈세 우려도 크다.
 
◆간접세=부가가치세·담배세·주세·인지세처럼 납세의무자와 조세부담자가 다른 세금. 소득과는 관련 없이 물건을 사며 내는 세금들이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이 가상대담은 펠드스타인의 칼럼 ‘The Illusory Flaws of Border Adjustment’ ‘The Shape of US Tax Reform’과 루비니의 칼럼 ‘America’s Bad Border Tax’ ‘US Border Tax Plan Could Stun Markets’ 등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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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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