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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태극기 두 개의 광장, 언론도 반성해야...과거 파헤치기보다 미래 향해 나아갈 때

중앙선데이 2017.03.19 01:03
[창간 10주년 기획]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인터뷰
박종근 기자

박종근 기자

국내 유일의 일요일 신문인 중앙SUNDAY가 창간 10주년(3월 18일)을 맞았다. 중앙SUNDAY는 창간 기념 인물 인터뷰 대상을 물색하던 중 일부 편집국 기자들로부터 중앙SUNDAY 창간인인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을 인터뷰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선례가 없진 않으나 자사 사주를 인터뷰하는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탄핵 정국을 지나며 적잖은 독자의 관심이 홍 회장과 중앙일보·JTBC에 쏠리고 있다는 점에서 뉴스로서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 인터뷰를 추진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10일)은 지난해 10월 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촉발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 촛불 세력과 태극기 세력 간의 갈등과 대치가 이어졌고 탄핵 결정 이후에도 일부 세력들이 헌재 결정에 불복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국론 분열과 혼란이 극심해지고 있다. 인터뷰는 5월 조기 대선까지 겹쳐 어수선한 이때 국민 통합과 안정을 위한 언론의 역할과 사명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홍 회장의 견해를 듣고자 하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지난 8일 오후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1차 인터뷰에 이어 탄핵 결정 이후인 지난 16일 일부 질문이 더해진 추가 인터뷰를 했다. 중앙일보 회장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입사 10년차 미만의 기자 4명(사진, 홍 회장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민경원·김기환·김경희·강기헌)이 인터뷰어(interviewer)로 참가했다. 홍 회장은 중앙SUNDAY 창간의 배경, 뉴미디어 시대의 언론의 역할, 정치권 일각에서 나도는 대선 출마설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중앙SUNDAY 창간은 한국 언론사의 첫 도전이었다. 창간 배경과 동기는 무엇인가.
“(미국 대사에서 돌아온) 2006년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면서 신문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신문들이 한 달에 두 번 내던 일요판마저 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더타임스 등 선진국은 일요판 신문이 훨씬 독자 수를 많이 갖고 있다. 일요판은 모처럼 편안하게 소파에서 읽을 수 있고, 한 주를 정리하고 다음 한 주를 준비하는 신문으로서의 힘이 있었는데 그나마 있던 신문까지 없애는 상황이 가슴 아팠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서 옛날같이 독재정권에서 신문 내지 말라는 시절도 아닌데 자기 미디어를 없애는 게 맞는 것인가 고민했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신문이 따라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안 따라왔다.”
 
 
10년의 소회와 평가를 하자면.
“착근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본다. 첫째, 우리가 압축성장을 하면서 세계 11위권까지 올라왔지만 지식의 인프라, 지성의 깊이랄까 이런 점에서 아직 더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말하자면 지적 기반에서 선진국 수준에 가지 못했다. 일요일에는 중앙SUNDAY나 고급 신문을 읽겠다는 사람이 적어도 100만 명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지식인 기반이 아직 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는 배달의 문제다. 우리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나라도 일요일 배달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배달 인력 구하기가 힘들고 비용이 높다. 셋째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시장 형태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선진국과 같은 리테일 광고가 붙지 않는다. 선진국은 맞벌이 부부들이 주말, 특히 일요일에 쇼핑을 하는데 우리는 마트가 밤늦게까지 여니까 주중에 많이 쇼핑하고 주말은 오히려 지방 여행을 가서 쇼핑이 받쳐주는 광고가 적다. 또 공급자 쪽에서는 퀄리티를 더 높여야 하지 않을까. 특히 시사성 있는 정치·경제·문화의 깊이 있는 기사, 오피니언 리더층이 중앙SUNDAY를 안 보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자와 기자 양쪽 모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하루아침에 되긴 쉽지 않다. 그래도 평가하자면 잘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혁명으로 신문 어려워지자 
일요판 내지 않게 된 현실 안타까워
선데이 창간,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
사실 보도에 분석의 기능 더해
오피니언 리더층이 찾는 신문 돼야
 
 
종이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1995년에 빌 게이츠가 종이신문이 10년 안에 없어진다고 예언했는데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어떤 형태로 변할 것인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종이신문에 담기는 콘텐트가 팩트 중심의 뉴스가 아니라 사실 보도를 바탕으로 한 부가가치가 더 붙은 분석 기능을 원한다. 낮에 일어난 일을 다음날 아침에 다시 실으면 누가 읽겠나. 또 오피니언 페이지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종이 신문으로서의 중앙SUNDAY는 제일 오래가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혁신은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미래를 이끌어갈 전문가들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동안 혁신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좀 늦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마인드를 가진 혁신가들이 더 일찍 들어왔다면 더 빨리 혁신이 됐을 텐데. 사실 우리나라가 디지털 인프라는 최고인데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한 미디어는 좀 늦지 않았나. 고속도로는 잘 깔아놨지만 활용성과 다양성은 뒤처져 있다. 앞으로 디지털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힘들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느냐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디지털 혁신은 홍정도 사장이 이끌고 있지만 주로 미래 전략이나 회사의 나아갈 큰 방향을 짜는 데 치중할 것이다. 중앙일보는 전통적으로 선대 홍진기 회장 때부터도 그랬고, 나도 경영과 편집을 엄격히 분리하는 체제를 지켜왔다. 홍 사장도 편집·편성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전통을 지켜 나가리라 믿는다. 젊은 리더십이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주역이 돼 더 잘해주기 바란다. 또 좋은 언론은 좋은 기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기자 여러분들이 사명감을 갖고 좋은 언론을 만들어 달라.”
  
 
JTBC 태블릿 PC 보도와 탄핵
 
 
헌법 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가 8대 0으로 대통령 파면 선고를 했다. 소회가 어떤가.
“이정미 재판관이 읽은 결정문을 보면 법리적인 걸 떠나 상식적으로 잘 정리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려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돼 나가는 대통령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나고, 또 한편으론 어려운 때일수록 대통령이 국민에게 진솔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JTBC 보도로 탄핵 정국이 촉발됐다. 탄핵 국면에서 중앙일보·JTBC가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
“태블릿PC 보도가 대한민국의 역사에 남을 커다란 보도를 했다는 데 대해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 사실 그때는 이것이 대통령 탄핵까지 연결이 되리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교과서적이지만 언론의 역할, 팩트의 힘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웅변적으로 보여줬다. 영원히 변치 않는 건 역시 팩트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프지만 사회를 바꾸는 기폭제가 됐다. 그런 점에서 JTBC와 중앙일보가 보도를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중에 태블릿PC 조작설이 나오는 걸 보고는 아주 놀랐다. ‘포스트 트루스’(Post-truth·탈진실: 사실보다 감정·신념이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라는 말이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올해의 단어’(2016년)로 선정될 만큼 서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언론 소비 패턴의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갈라졌으면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탄핵 이후에도 진영 갈등은 여전하다. 치유할 시간 없이 바로 대선 국면에 접어들다 보니 대립이 더 심해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럴 때야말로 정말 사회의 큰 원로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역할을 하셔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 또 과거와 같은 카리스마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있으면 사회를 끌고나갈 동력이 됐을 텐데 지금 정치인들은 너무 정파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사생결단하는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를 얼마나 치유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나는 촛불이나 태극기나 각자 애국심에서 나온 분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지난한 일이긴 하지만 상대방이 갖고 있는 애국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서로 끌어안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탄핵 국면, 강한 팩트의 힘 보여줘
태블릿PC 조작설 많이 믿어 놀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패턴 우려
미용 등 디테일에 함몰된 보도가
심한 것 아니냐는 보수층 반발 불러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부정적인 면을 너무 부각시키기보다 서로가 갖고 있는 애국심을 드러내서, 이제는 과거를 서로 파헤치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마음을 한자락 깔고 보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탄핵 국면에서 광장이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화된 데는 언론이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본다. 큰 그림을 봐야 하는데 너무 디테일 경쟁에 함몰돼 저기까지 갈 필요가 있나 하는 것까지 보도됐다. 실 리프팅인가 하는 미용 시술 문제, 그런 디테일까지 꼭 들어가야 했나. 그러다 보니까 대통령에 대해 너무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발이 보수층에서 일어난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지난해 12월 17일에 나가봤다. 광장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를 바꿔놓는 현장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태극기집회는 가보지 않았지만 내 친구들이 많이 가서 분위기를 잘 안다.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는 시민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반(半)축제이면서 국민의 울분이 표현되는 하나의 광장이란 인상을 받았다. 광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일회적인 외침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담아내는 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리셋 코리아(보수·진보가 함께하는 국가 개혁 프로젝트)와 시민마이크(시민들과 함께하는 온라인 의견 수렴 운동)를 만들게 됐다. 이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나가야 한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언론이 어떤 검증에 주력해야 한다고 보나.
“도덕성도 중요하지만 능력에 대한 검증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나쁜 사람도 좋은 부하들이 받쳐주면 대통령 할 수는 있다. 그런데 능력 없는 사람이 했을 땐 대책이 없다. 예를 들어 주요 후보 2~3명이 아무 자료도 가져오지 말고 하루 종일 TV 토론을 해보면 어떤가. 충분히 능력을 검증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언론은 이념을 넘어서는 것 아닌가. 태블릿PC 보도도 좌냐 우냐 하는 이념과 상관 있는 게 아니라 팩트냐 아니냐의 문제 아니었나. 탄핵 국면에서도 진보·보수 없이 모든 언론이 다 (대통령) 내려가라고 하지 않았나. 이번 대선 국면에서 언론이 능력 검증을 제대로 해줄 수만 있다면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게 된다.”
 
 
리셋코리아 · 한반도 포럼 · WCO 
 
 
한반도 포럼 등 통일 관련 활동, 경희대 강연(2015년) 등 통상적 언론사주의 활동과는 다른 행보를 해왔다. 얼마 전엔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란 책도 냈다. 대선 관련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돌고 있는데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다.
“여러분이 내 인생을 이해해야 된다. 내가 나라 걱정을 하게 된 건 오래됐다. 특히 신문사에 와서부터는 남이 안 하는 나라 걱정을 많이 했다. 선친이 어려움을 겪었고 그래서 난 어려서부터 정치에 노출돼 있었다. 할머니가 법대 가는 걸 말려 결국 공대에 갔다가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나더라. 재무부·청와대· KDI, 그전엔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6년 일했으니까 난 쭉 정책을 다뤄온 사람이다. 선친이 오래 사셨으면 중앙일보에 안 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있듯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신문사에 오게 됐다.

통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원불교의 대산 종법사님이 나를 굉장히 사랑하셨는데, 이분이 늘 나한테 ‘너는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일에 대해 좀 깊이 연구를 하고 역할을 하라’고 했다. 그때는 별로 와 닿지 않았지만 하도 얘기를 하시니까 책 좀 들여다봤다. 직접적으로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94년 국회에서 있었던 이부영 조문 파동이다. 94년은 내가 운명적으로 중앙일보에 오게 된 해인데, 그해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이부영 당시 민주당 의원이 북에 조문단을 보내야 한다고 해 국회에서 난리가 났다. 조문 파동을 겪으면서 우리 논설위원실과 토론을 많이 했다. 이 과정을 지나면서 95년 초 (중앙일보의 논조가) 포용정책으로 바뀐 거다. 이후 예산 1%를 대북지원에 쓰자는 어젠다를 제시하고 방북 취재단을 보내는 활동을 하면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 신문이 정치적으로 가장 중립적인 신문이란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4시간 반 동안 나와 대담을 했다. 그러다가 (주미)대사까지 가게 됐다. 이것 역시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건이다.


한반도 포럼은 2011년 1월 학자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구상한 것이다. ‘내년이 대선인데 지금 남북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졌으니 새 정부에서는 진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가 쭉 해온 게 있으니까 진보와 보수 진영 최고의 학자들로 한반도 포럼을 결성하자’고 해서 만들어졌다. 통일 정책에 관한 정책 메뉴판을 만든 건데 박근혜 후보는 우리가 만든 것의 70%, 문재인 후보는 거의 90%를 가지고 갔다.”
경제학 박사 후 정부서 쭉 정책 다뤄
평화·남북문제 죽을 때까지 할 것
촛불 메시지가 '이게 나라냐' 였다면
'이게 나라다' 프로그램이 리셋코리아
회장직 사퇴하고 경영에서 손 뗄 것
 
 
올 들어 리셋 코리아 활동에 몰두하면서 정치적 오해도 사고 있다.
“우리의 태블릿PC 보도로 나라가 크게 뒤집어지는 것을 봤다. 촛불이 내세운 강력한 메시지가 ‘이게 나라냐’였다면 ‘이게 나라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 않나. 내가 책임감을 느낀 거다. 정치인들은 정권교체가 되면 ‘이게 나라다’ 하는 게 될 것 같다고 하지만 여러분들 동의하세요? (기자들이 ‘안 될 거라는 얘기가 많다’고 하자) 누가 대통령이 되건 중앙일보도 JTBC도 리셋해야 되고 나도 국민도 모두가 리셋을 해야 한다. 최장집 선생 책(『양손잡이 민주주의』)에도 나오지만 촛불혁명이 명예혁명이 되려면 탄핵 이후에 새로운 나라가 태어나야 한다. 시스템적으로도 그렇고 관행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평소 나라 걱정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대선 출마설까지 나온 게 아닐까.

월드컬처오픈(WCO)도 열린 문화운동을 해온 것이지 어떤 정치적 꿈과 연결하는 건 전혀 아니고, 그건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공적 열망은 유엔 사무총장 후보에 대해 약속을 받고 주미 대사로 갔을 때는 정말 끓어 올랐다. 내가 깊이 연구했기 때문에 사무총장으로 가서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게 좌절됐을 때의 아픔은 말로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리를 놓고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 번영, 남북 문제 같은 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할 거다. 특히 지금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와 있기 때문에 걱정을 더하게 된다.”
 
 
독자들은 물론 우리 기자들도 궁금해하고 있다. 확실한 입장을 어느 선까지 밝힐 수 있나.
“거기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하고 있다. 중앙일보·JTBC 회장직도 사퇴하고 경영에서 손을 뗄 생각이다. 열심히 고민을 해서 할 일을 한두 가지 찾았다. WCO도 그중 하나고. 또 하나는 유연한 싱크탱크를 해보고 싶다. 중앙일보 밖에 사무국을 차려 요즘 국민이 한번 풀어줬으면 하는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풀어보고 싶다. 예를 들면 교육, 청년실업, 기업의 지배구조, 한·중 갈등 같은 것을 선택한다고 하면 정부의 장관 혹은 부총리 이상 지낸 분을 좌장으로 모셔서 서너 명의 학자와 실제 현장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태스크포스를 만드는 거다. 지속적인 연구와 세미나를 열어 결과물을 낸 뒤 현장의 반응을 알아보고 6개월 이내, 아무리 오래 걸려도 1년 이내에 현실감 있는 대책을 제시하는 걸 해볼까 생각하고 학자들과 논의하고 있다.”
  
 
가족사 
 
 
가족과 관련한 뉴스가 많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보는 심경은.
“피가 통한 조카인데 당연히 가슴이 아프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그 상황에서 (청와대의) 강요가 됐건 아니건 거절하기는 한국 문화와,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 등 여태까지의 풍토에서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의 진위 판단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하겠지만 그걸 떠나서 이제는 여태까지 정부와 기업 간의 관행 같은 것은 끊어질 수밖에 없고 끊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이 개인적인 아픔은 차치하고 이제 우리가 (최순실 사태를 통해) 얻고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이게 기업 총수나 한 기업인의 문제로 끝이 나야지 우리 사회에 상당히 위험한 수준으로 팽배해 있는 반기업 정서(로 확대돼선 안 된다), 더 팽배해지면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우리 기업이 어려워지면 제일 좋아할 사람들이 경쟁자인 외국 기업이고, 제일 손해 볼 사람은 우리 국민이다.”
 
 
헌재 결정문에도 재단 출연 부분에 대해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했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명시돼 있다. 일부 외신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성숙한 자본주의로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이번에 한국이 정경유착 문제를 깨끗이 정리한다면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불이익을 넘어설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기업도 정치권에 기대어 특혜를 받으려는 구태를 끊는 노력, 나아가 권력의 부당한 요구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정치권도 칼자루를 쥐었다고 생각하는 기업에 대한 갑질 관행, 부당한 간섭과 압력을 원천적으로 끊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정한 거래와 투명한 시장 질서같이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경제민주화는 당연히 추진돼야 하지만 그것과 함께 창업 생태계 조성이라든지, 각종 보이지 않는 기업 행위에 대한 규제 철폐 등 경제 자유화도 함께 이뤄져야 진정한 새로운 기업문화가 생겨나는 것 아니겠는가.”
 
 
홍라희 여사가 이 부회장 구속 후 홍 회장과 삼성의 실권을 쥘 것이란 보도도 나왔다.
“확인해 봤더니 최순실이 그런 얘기한 건 사실이더라. 그런 사람이 대통령 옆에서 (국정 개입을) 했다는 게 슬픈 일이다. 사람 심리를 몰라서 그러는데 아들은 후계자이기 때문에 더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이건희 회장도 홍 여사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끔찍하다. 그런데 나는 왜 등장시켰는지, 유명세라고 봐야겠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누이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누이가 카톡 보냈는데 가슴이 찢어진다고 하더라. 그게 모성이다.”
 
 
엄청난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
“신문 읽는 것까지 합쳐 하루 3시간씩은 읽는 것 같다. 소위 처세술·힐링 이런 책은 신문 서평만 보고 말지만 좋은 소설이나 고전·종교·철학·과학책은 정독한다. 최근엔 김훈 선생의  『공터에서』를 재미나게 읽었다.”
 
 
독서 이외에 즐기는 문화생활이 있다면.
“10년이 채 안 됐지만 붓글씨 쓰는 게 습관이 돼 TV 보면서도 하루에 10~20분은 끄적거리고 주말엔 한두 시간씩 쓴다. 서예진흥재단 이사장으로서 서예 도입 운동도 주도하고 있다. 내 구호가 ‘한 손엔 스마트폰, 한 손에는 붓을’이다(웃음).”
 
 
정신수양에 도움이 되나.
“글쓰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신 집중이 되지 않으면 써지지 않는다. 마음이 흔들리고 요란할 땐 참선도 안 된다. 삼성 특검 수사받을 때 한승원씨 소설 『추사』를 읽었다. 추사가 제주도에 귀향 가서 7년여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나 참선도 안 되니까 붓을 잡고 몇 시간씩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그걸 보고 붓글씨를 시작했는데 그 말씀의 뜻을 금방 이해하겠더라.”
 
 
5개 국어를 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영어는 우리말처럼 하고 일어는 신문 보고 NHK 뉴스 다 듣는 수준이다. 중국어는 그냥 간단한 거 하는 정도, 불어는 일어 다음 정도는 한다. 독일어는 어려서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5개다.”
 
 
지금도 공부하나.
“불어는 지금도 한다. 또 끊임없이 공부하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영어다. 요새도 스마트폰으로 뉴욕타임스 등 신문 기사·사설을 보고 새로운 단어 다 찾으니까 고급 영어를 할 수 있다. 역시 언어는 어휘를 많이 아는 게 중요하다.”
 
 
스타일링 때 가장 중시하는 아이템은 뭔가.
“옷에 좀 관심 있다. 색깔 맞춰서 입고 나온다. 오늘은 할 수 없이 넥타이를 맸는데 넥타이 매는 걸 싫어한다. 1~2년 전부터는 젊은 느낌이 가도록 바지폭도 줄이고(웃음). 내 친구들은 대부분이 둔감한데 가끔 자기들이랑 다른 옷을 입고 나오니까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더라.”
 
 
강기헌·김기환·민경원·김경희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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