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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좌우날개만 있고 몸통 없는 사회 … 경청하는 시민들이 그 몸통이죠

중앙일보 2017.02.25 01:26
‘입을 닫고 귀를 열자’ 경청 전도사, 조성택 고대 교수
 
조성택 교수는 불교인이다. 경청전도사 표현이 거슬리지 않는지 물었다. “영광입니다. 제게 불교는 신앙보다 태도입니다. 한마디로 열린 마음입니다. 경청도 그렇습니다. 영어로 ‘액티브 리스닝’ ‘포지티브 리스닝’이라 하죠.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성택 교수는 불교인이다. 경청전도사 표현이 거슬리지 않는지 물었다. “영광입니다. 제게 불교는 신앙보다 태도입니다. 한마디로 열린 마음입니다. 경청도 그렇습니다. 영어로 ‘액티브 리스닝’ ‘포지티브 리스닝’이라 하죠.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광장이 쪼개졌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촛불과 태극기가 맞서고 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과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 창과 방패의 격돌처럼 이만한 모순도 없다. 둘 모두 애국을 내세우지만 타협점은 보이지 않는다. 조성택(60) 고려대 철학과 교수의 마음도 숯덩이가 됐다.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대화는 불가능한 걸까.” 우리 사회에 경청(傾聽)의 가치, 즉 “입을 닫고 귀를 열자”고 부르짖어 온 그다. 2년 전 출범한 민간모임 ‘함께하는 경청’(이사장 정성헌)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그와 함께 이른바 불통사회를 벗어나는 길을 찾아봤다.
 
경청, 말은 좋지만 실천은 어려운데.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제주도 강정마을이 극심한 갈등에 빠졌다. 안보냐, 환경이냐, 2분법이 난무했다. 자기 입장만 내세웠다. 환경을 택하면 안보를 무시해도 되고, 안보를 택하면 환경을 무시해도 되는가. 우리에겐 둘 다 중요하다. 양자택일이 아니다. 평소 공부해 온 원효의 화쟁(和諍)을 떠올렸다. 그 구체적 실천 방안이 경청이다.”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도 맡고 있다.
“다양한 생각을 통합하는 화쟁의 핵심은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원효는 개시개비(皆是皆非)라고 했다. 모든 주장이 다 옳고, 또 다 그르다는 뜻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생각하면 쉽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알 수 있나. 세상에는 단 하나의 옮음이 아니라 복수의 옳음이 있다. 이게 요즘 말하는 공감의 출발점이다.”
 
사회운동으로까지 확대한 이유는.
“3년 전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재발 방지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학생들을 버린 선장, 구조에 소홀했던 당국 등 법적 책임은 물어야 하지만 동시에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를 철저히 밝혀야 했다. ‘누구’보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펴야 했다. 그러려면 들어야 한다.”
조성택 교수가 실무를 맡은 ‘함께하는 경청’은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해 실시한 초등학생 워크숍.

조성택 교수가 실무를 맡은 ‘함께하는 경청’은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해 실시한 초등학생 워크숍.

 
각자 이해가 달라 그렇지 않나.
“경청은 나부터 비우는 행위다. ‘저 사람이 어디가 틀렸나’ 하며 매복해서 듣는 게 아니다. 상대를 받아들이는 거다. 인문적 성찰이다. 한국 사회는 극단의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보수니, 진보니 철 지난 이념·신념·확신이 지금도 득세하고 있다. 정치인이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요즘 광화문·시청 광장이 대표적이다.
“JTBC 첫 보도가 나왔을 때 세상이 말갛게 개는 느낌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든, 안 찍었든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우려가 크다. 탄핵심판 이후에도 진영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정치권이 시민들의 명예혁명 열망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자신들의 어젠다로 가져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나.
“꼭 청와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들의 욕망이 개입되면서 광장이 변질됐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그는 촛불시위의 최대 수혜자였다. 대선보다 사회 개혁에 집중해야 했다. 대선은 어차피 이뤄질 프로세스 아닌가. 이제는 모든 관심이 사법적 판단에 쏠려 있다. 정치적 불구 상태다.”
 
정치의 목적은 권력쟁취 아닌가.
“정치학자들 얘기다. 권력을 사적으로 표현한 거다. 인문학자에게는 더 중요한 게 있다. 정치는 서로 다른 걸 어울리게, 공존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좋은 선례를 찾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1997년 민주당 대선후보였을 때 기자들이 이라크전 찬반 여부를 물었다. 답변이 기막혔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다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했다. ‘하느님이 미국 편’이냐는 질문도 있었다. ‘하느님이 우리 편이냐 아니냐보다 우리가 하느님 편에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알고 보니 이 말은 링컨이 먼저 썼다. 남북전쟁 때 ‘하느님은 북군 편’이라는 참모들의 말에 ‘우리가 늘 하느님 편에 있는지 염려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가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조 교수는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해군장교 시절 상황실에 걸린 세계전도 복판에 있는 인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선택한 중립국 인도에도 영향을 받았다. 동국대 석사과정에서 불교를 전공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고려대에 재직 중이다.
 
조성택 교수가 실무를 맡은 ‘함께하는 경청’은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해 실시한 직장인 워크숍.

조성택 교수가 실무를 맡은 ‘함께하는 경청’은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해 실시한 직장인 워크숍.

불교와 우연한 인연을 맺은 셈이다.
“불교는 우리 전통이지만 불교학은 근대의 산물이다.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다원적 세계관이 원효에 녹아 있다. 유럽학회에서도 화쟁에 대한 강연 요청이 많았다. 유럽연합(EU) 각국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된 유럽을 만드는 데 원효의 사상이 맞아떨어진 것 같다.”
 
화쟁이든, 경청이든 쉽게 말한다면.
“한마디로 사람대접 해주는 것이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정부 요청으로 철거민 중재에 나섰던 정성헌 이사장에 따르면 상대방 얘기만 잘 들어도 문제의 80%가 해결됐다고 한다. 우리 사회 숱한 갑을 논란도 경청으로 풀 수 있다. 갑과 을 구분보다 갑질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의사들의 가장 중요한 일도 환자들 말을 듣는 문진(問診) 아닌가. 현실에선 외면당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경청이 무력한 것 아닌가.
“경청은, 화쟁은 싸우지 말자는 게 아니다. 다투되 평화롭게 다투자는 것이다. 3년 전쯤 독일의 세계적 불교학자 람베르트 슈미트하우젠이 방한해 불상생 비폭력을 강의한 적이 있다. ‘만약 지금 여기에서 테러리스트가 총을 갈긴다면 어떤 게 불교적 대응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대답이 대가다웠다. ‘초기 동남아 불교라면 총을 맞고 죽는 수밖에 없다. 선의의 폭력도 업을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승불교 보살이라면 응징한다.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테러리스트의 악행을 막기 위해서다. 단 미움 없이 죽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도저한 경지다. 따라가기가 어렵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좌와 우, 날개만 있지 몸통이 없는 것 같다. 때에 따라 그 몸통을 좌로, 우로 힘차게 비상시켜야 하는데 날개만 있으니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거다. 그 몸통이 바로 경청하는 시민, 화쟁하는 시민이다. 시민이 성숙해지면 그만큼 강력해진다.”
 
핵심은 경청의 일상화 아닐까.
“맞다. 집에서 종종 아내의 핀잔을 받는다. ‘경청을 하겠다는 사람이 화를 내다니, 상처를 주다니…’ 불만을 터뜨린다. 가부장 환경에서 자라온 경상도 남자의 한계다. 농담이지만 경청의 대가는 카바레 제비다. 환심을 사려는 의도는 불순하지만 ‘그랬구나’ ‘힘들었구나’라며 상대방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역으로 경청과 가장 먼 사람은 정치인·종교인·교수다. 자기들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일반인 교육·강좌가 중요하겠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기업·지자체 워크숍도 열었다. 지난해 한국언론학회와 함께 경청지수를 개발했고, 오는 4월께 경청진단 앱도 내놓는다. 아이들이 그러더라. 엄마가 가장 대화하기 힘들고, 할머니가 가장 쉽다고. 엄마는 아이 말에 사사건건 토를 달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품어주는 할머니 마음, 그게 경청의 요체다. 바로 사람대접이다.”
왼쪽부터 달라이라마, 정성헌, 루이스 랭커스터.

왼쪽부터 달라이라마, 정성헌, 루이스 랭커스터.

[S BOX] 달라이라마 “최고의 설법가는 말을 안 하는 사람”
불교학자인 조성택 교수에게 물었다. “부처는 남의 말을 잘 들었겠죠.” 대답이 재치 있다. “아니요. 경전 속의 부처는 늘 얘기하고 있는데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잘못 배워 늘 설법하는 흉내를 내죠. 최고의 설법가는 말을 안 하는 사람입니다. 달라이라마가 그랬잖아요. ‘당신이 말할 때는 아는 것만 반복한다. 하지만 들으면 새것을 배우게 된다(When you talk, you are only repeating what you already know. But if you listen, you may learn something new)’라고요.”

조 교수에게 가까이 한 사람 중 경청의 모범적 사례를 꼽아달라고 했다. 그가 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이사장을 들었다. “사회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 온 분입니다. 그런데도 밖에 있는 적을 타도하는 것보다 내 안의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분하고 얘기하고 있으면 정말 잘 들으세요. ‘그렇지, 그렇지, 우리가 운동할 때 그런 걸 자주 무시했죠’라며 지난 과오를 받아들입니다.”

또 한 명은 루이스 랭커스터 UC 버클리대 명예교수다.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린 세계적 학자다. “학생들을 20~30년 가르쳤는데 그들이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학생들 질문을 듣고 대답했을 뿐이라는 거죠. 수업도 질의응답으로 진행합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궁금증을 찾아내게 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교육인 것 같습니다.”


글=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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