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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의 늪’ 없앤 고려대 실험, 저소득층 학생 성적 올랐다

중앙일보 2017.02.06 03:12 종합 2면 지면보기
김수정(가명·22·여)씨는 2014년 3월 고려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그에겐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다행히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았으나 생활비를 구할 길이 막막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자폐를 겪는 오빠를 돌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결국 직접 벌어야 했다. 입학부터 2학년 겨울방학까지 김씨는 주 3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카페에서 서빙을 해 월 30여만원을 벌었다. 주말엔 2건의 과외를 했다. 그는 “시험 때도 알바도 과외도 중단하기 어려웠다”며 “친구들처럼 맘 편하게 공부하는 게 소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소원이 이뤄진 건 3학년부터다. 지난해 1학기부터 고려대가 성적우수자에게 주는 장학금(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혜택을 늘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씨는 학기 중은 물론 방학에도 매달 30만원을 생활비로 받았다.

김씨는 서빙 일은 그만두고 과외를 하나로 줄여 공부에 전념할 시간을 늘렸다. 1·2학년 때 3점대에 그쳤던 평점이 3학년 1·2학기 모두 4.3점으로 올랐다.
국내 대학 최초로 성적장학금을 폐지한 고려대의 ‘장학금 실험’이 시행 1년을 맞았다. 도입 당시엔 ‘학습 의욕을 꺾는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현재는 구성원 다수가 지지하는 분위기다. 염재호 총장은 “공부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역설을 해결하는 것이 성적장학금 폐지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고려대는 성적장학금을 없애고 그 예산(34억원)을 저소득층 장학금, 학생자치 장학금 등으로 배분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저소득층 장학금 예산은 91억1500만원(전체 214억원)으로 2015년(77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겐 매달(방학 포함) 30만~5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자영업자 등 저소득층 기준 보완할 필요
저소득층 장학금을 받은 학생 수도 2401명(2015년 1학기)에서 3383명(2016년 1학기)으로 늘었다. 소득 1~5분위에 해당하는 2400명이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았는데, 2015년엔 소득 1~2분위만 면제였다. 저소득층 학생이 교내 근로를 하는 경우 근로장학금을 일반 학생의 1.5배 지급했다.

수혜 학생들은 “돈과 시간뿐 아니라 자신감도 얻었다”고 밝혔다. 3학년 박홍빈(22)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까지 미국 오리건대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박씨는 “예전 같았으면 알바에 치여 엄두도 못 냈을 일”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 장학금을 받기 전까지 박씨는 학기 중엔 제과점 알바를, 방학엔 고향에서 7건씩 과외를 했다. 교환학생을 간 동안 학교로부터 5개월간 미국 생활비와 등록금, 항공료도 지원받았다. 지난 학기 그의 성적은 7개 과목 중 한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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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초기 성적장학금 폐지에 불만이던 학생들도 생각이 바뀌었다. 이 학교 4학년 홍모씨는 2015년 2학기 전 과목 A+를 받아 기존 방식대로라면 지난해 성적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홍씨는 “처음엔 솔직히 억울했지만 지금은 장학금이 인센티브가 아니라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것이란 취지에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신 홍씨는 성적장학금 폐지 후 늘어난 해외 프로젝트 장학금 대상에 선발돼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저소득층 산정에 기준이 되는 소득분위 기준을 보완하자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부모가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김모(2학년)씨는 지난해 5분위로 산정돼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김씨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자영업 하는 부모님의 소득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한국장학재단이 내놓은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사용하는데 일부 불합리한 부분도 없지 않다”며 “공정한 장학금 집행을 위해 개선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재단의 안대찬 홍보팀장은 “국세청 자료를 통해 소득분위 산정을 하는데 자영업자 소득 파악 등엔 일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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