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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이적의 실험정신

중앙일보 2017.01.30 00:02
가수 이적을 인터뷰하러 가며 취재기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를 하는 이유가 뭐지?”
“큰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 참에 공연이야기며 음악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원래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데 웬일일까?”
“선배도 그를 안 만나 보셨어요?”
“인연이 없었지.”

그의 데뷔 시절을 기억한다.
‘패닉’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게 1995년이었다.
앨범이 나오자마자 ‘달팽이’, ‘왼손잡이’는 단박에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당시 신문에선 그의 곡 ‘왼손잡이’에서 모티브를 얻어 왼손잡이 특집기획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데뷔한 게 22년째다.
그동안 그를 만난 적 없었다.
오랜 세월 그의 노래를 듣고 가사를 음미해온 터라 그 누구의 인터뷰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을 때 취재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가 천재인지 아닌지 한번 파보고 싶네요.”
“그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거야?”
“항간에 그를 두고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의 음악도 좀 그런 면이 있죠. 뭔가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그만의 음악, 이를 테면 이적만이 할 수 있는 ‘이적 장르’라고 할까요.”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특히 ‘이적 장르’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심 인터뷰가 기대되었다.
인터뷰 장소는 빵과 음료를 파는 곳이었다.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그나마 피할 수 있는 제일 구석자리를 택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말을 꺼냈다.
“인터뷰가 몇 년만인지 모르겠네요.”
그러면서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그동안 소극장 무대에 집중해왔다고 했다.
2004년부터니 12년째였다.
집에서 흥얼흥얼 노래 만들었을 때,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고 싶어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시국에 공연을 해야 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가 뭘까, 이 엄중한 시국에 지금 노래나 들을 땐가라고 말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가수의 공연 중에 저를 택해준 그 사람들에게 어떤 공연을 하나, 하는 생각이요. 명확히 규정할 수 없지만 제 음악을 통해 뭔가 받고 싶은 게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위로겠죠. 그래서 공연 제목을 ‘울려 퍼지다’로 정했습니다. 동심원으로 퍼져나가는 물결 소리처럼 제 마음이 퍼져나가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울려 퍼지다’의 설명을 듣고 옳다구나 싶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잡은 구석자리인데 마침 그곳에 오래된 스피커가 놓여있었다.
그것을 배경으로 하면 더 할 나위 없을듯했다.

카페의 매니저를 찾아갔다.
사진 촬영의 허락을 구하고자 함이었다.
다른 손님들에게 지장을 준다는 이유를 대부분 허락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리 허락을 구해 둘 요량이었다.
카페매니저는 ‘이적’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속으로 ‘다행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공연 이야기를 끝내고 취재기자가 미리부터 작정한 질문을 했다.
“김동률씨가 ‘이적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가 먼저 손사래를 치는 것과 동시에 답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니 같이 못하는 거죠”

한참 웃은 후 이야기를 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이건 동률이가 저의 게으름을 일컫는 겁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제가 부침이 많았습니다. 쭉 성공 가도를 달려온 건 아니죠.
데뷔 초엔 목소리가 불편하다, 울퉁불퉁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목소리였잖아요. 십 년이 지나서야 노래 좀 하네 하는 소릴 들었어요.
그나마 요즘에야 들어줄 만하게 되었죠. 이나마도 좋아 해주시는 게 근근이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격려라 생각합니다.”
취재기자가 슬쩍 다른 말을 유도했다.
“이적씨 노래를 다른 사람들이 경연에서 많이들 부르잖아요.”
“제 노래를 경연에서 많이들 불렀는데 다들 결과가 안 좋더라구요. 십 여명이 제 노래를 부른 날 떨어지는 걸 봤어요. 아무도 1등 하는 걸 못 봤습니다.”

“왜 그런데도 사람들이 부를까요?”
“제가 분석해볼 때 좀 만만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김범수 곡은 어렵잖아요.
이건 제 추측일 뿐입니다만….”
‘수많은 히트곡이 있지 않습니까?”
“제 노래가 공중파 차트 1등한 게 두 곡뿐입니다. 그나마 만들어진 지 오 년 지나서 ‘하늘을 달리다’가 음원 차트 1등을 했구요. 폭발적 팬덤이 있는 게 아니고 뜨뜻미지근하게 가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폭망'한다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일단 잘 만들어 놓자고 생각합니다.”

둘의 대화로 볼 때 취재기자는 이적이 조금이라도 잘난 척해주길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이적의 답엔 한결같이 겸손이 담겼다.

그래서인지 취재기자가 다소 직설적인 질문을 했다.
“범생이와 반항아의 성향을 다 가진 거 같은데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둘 다 가진 거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날이 막 서있는 노래를 만들지는 않아요."

“ 세상에 따라 변화하는 겁니까?”
“지금의 정서와 예전의 정서가 다르잖아요. 예전엔 가수가 왜 예능에 나가냐고 비난했는데 요즘은 왜 예능에 안 나가냐고 부추기잖아요. 그래도 실험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도 실험적인 거구요. 전인권 선배의 원곡인 록 ‘걱정 말아요 그대’를 통기타 하나로 연주하며 읊조리듯 리메이크한 것도 제 나름의 실험입니다.”

결국 그의 답을 통해 볼 때 그는 스스로를 천재가 아니라 실험가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때 그의 매니저가 시간이 다되었다는 신호를 줬다.
정해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린 느낌이었다.

서둘러 사진을 찍어야 했다.
매니저는 5분 정도 시간이 있다고 했다.
스피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미리 구해둔 게 다행이었다.



스피커를 배경으로 앉은 그에게 주문을 했다.
“실험가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 요구에 그는 아무런 반론을 제기 하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취재기자에게 물었다.
“어떤 느낌이야?”
“그가 ‘새 앨범은 노래를 더 해도 된다는 대중의 허락 같은 거다’라고 했잖아요. 대중의 허락을 얻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노력하는 천재 같아요.”
지난 주말의 서울 공연을 앞두고 그의 SNS에 이런 글이 올랐었다.
‘주말 서울 공연입니다. 합주연습하며 부르는 패닉 시절의 'UFO'가 온전히 분노의 노래로 들리는 게 오랜만이네요. 이 참담한 공기 속에 공연장을 가득 채워주실 분들과 손 꼭 붙잡고 노래를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각 광화문에 계실 여러분께 마음 깊은 곳에서 응원을 보냅니다.’
그 곡 'UFO'를 찾아 들어봤다.
1996년 패닉의 2집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다.
이런 가사가 있었다.
‘살찐 돼지들과 거짓 놀음 밑에
단지 무릎 꿇어야 했던

피 흘리며 떠난 잊혀져 간 모두
다시 돌아와 이제 이 하늘을 가르리’
이 곡 또한 20여 년 전 그가 했던 실험의 하나라 여겨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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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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