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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 100일, 법인카드 미스터리] 접대는 안 했는데 법카 씀씀이는 늘었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7.01.15 00:01
10~11월 법인카드 사용액 오히려 증가... ‘n분의 1’ 확산으로 보기도 어려워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던 법인카드 사용액이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11월 법인카드 승인금액은 총 28조8000억원. 전년 동기(23조4000억원)보다 23% 증가했다. 법인카드 승인금액은 김영란법 시행 직후인 지난 10월 15조2100억원으로 26.5% 증가한 데 이어 11월에도 13조56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9.2% 늘었다.

여신금융협회는 전국 카드 가맹점의 매출 기록을 바탕으로 매달 개인·법인카드 승인금액을 발표한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지난해 9월 법인카드 승인액은 15조5000억원이다. 10월 들어서 9월보다 법인카드 사용이 줄었지만, 9월에 추석 수요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감소폭이 크지 않다. 11월에는 10월보다 10.8% 줄었다. 이 역시 김영란법 여파보다는 공과금 결제가 2조원 가까이 줄어든 영향이다. 11월 공과금을 제외한 법인카드 승인금액은 전월 대비 7.5% 증가했다.

두 달 간의 통계로만 보면 접대용도의 법인카드 중심으로 소비절벽이 올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김영란법 영향이 없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얼어 붙은 소비시장 분위기 때문이다. 소비 심리와 지표 간 괴리 현상이 빚어지는 상황에 전문가들도 뚜렷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법카(법인카드)’의 미스터리다.
 
▶가설1=줄어든 ‘을’의 사용액을 ‘갑’이 채웠다?
언론인 김상필(38·가명)씨는 지난해 10월 이후 취재비가 크게 늘었다. 기업 관계자와의 식사 후 ‘n분의 1’로 나눠 계산하기 시작하면서다. 김씨는 “예전에는 한쪽이 10만원을 냈다면 지금은 두 회사가 5만원씩 나눠내는 셈이니 전체 비용은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법인카드 승인액이 증가한 원인으로 김영란법의 취지대로 n분의 1로 계산한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인을 제외하면 김영란법 대상의 절대 다수는 공직자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이 사용하는 ‘업무추진비’ 예산에 큰 변동은 없다. 김영란법 대상자의 법인카드 지출액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식사비를 나눠냈다면 건당 평균 결제금액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11월 공과금을 제외한 법인카드의 평균 결제금액은 11만1239원으로 전년 대비 1.6% 감소하긴 했다. 그러나 정채중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소액 품목의 카드결제 보편화로 평균 결제금액이 감소 추세임을 감안하면 김영란법으로 건당 승인금액이 크게 줄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건당 승인금액이 유지됐다고 가정하면 여러 해석이 통하지 않게 된다. ‘3만원 이하로 먹는 대신 식사 횟수가 늘었다’는 설명 등이다. 갑과 을이 1·2차를 나눠냈을 가능성은 있다. 이 경우 카드 승인 건수와 결제금액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를 확인하려면 주체별 카드 사용액을 따져봐야 하지만 관련 통계는 집계되지 않는다. 다만 이 가설도 공직자의 업무추진비 예산 부분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가설2=접대 말고도 쓸 곳 많아서?
대기업 홍보팀장 임석대(45·가명)씨는 “김영란법으로 사용처에 제약이 있더라도 법카 한도는 어떻게든 채워 쓴다”고 말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카는 한정된 자금을 풀어야 하는 일종의 신용할당과 같다”며 “어차피 할당된 한도가 있는 만큼 다른 용도로라도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법카의 접대 관련 지출은 줄고 다른 항목의 사용액이 증가했어야 한다. 하지만 법인카드의 항목별 승인액을 보면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 일반음식점 승인액이 김영란법 시행 전인 9월 1조2800억원에서 10월 1조3900억원, 11월 1조4600억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10월 0.2% 감소에 그치고 11월에는 6.4% 증가했다.

법인카드 10대 지출 항목 가운데 김영란법 이후 감소한 것은 약국·항공사 등 김영란법과 관계가 적은 업종이다. 김영란법과 직결되는 유흥주점과 골프장 등의 법인카드 승인액이 10월 들어 각각 15.1%, 7.9% 감소했지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정도로 미미해 전체 법인카드 사용량을 좌우할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김영란법 영향을 받는 일부 업종의 법인카드 승인금액 축소가 전반적인 국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설3=김영란법 공포는 엄살이었다?
일반음식점에서의 승인액이 유지됐다는 것이 전제라면, 김영란법 비적용 대상자끼리의 식사가 늘어 일반음식점 매출이 유지됐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공과금 제외한 전체 카드 승인금액 중 법인카드 비중(16.8%)이 작아 영향이 미미하다”는 여신금융협회의 분석도 있다. 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시국이 뒤숭숭한 틈을 타 김영란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여러 이유로 김영란법 여파로 소비절벽이 올 것이라던 기존 예측이 틀렸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업이 본격적으로 김영란법을 영업 예산에 반영하는 올해 초부터 법카 사용 추이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경우 이미 얼어붙은 시장의 소비심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지난해 12월 27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2016년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는 94.2로 집계됐다. 전달(95.8)보다 1.6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과 같은 수준이다. 100을 밑돌면 현재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이 밖에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의 ‘국내 외식업 매출 영향조사’에 따르면 외식업 운영자의 63.5%가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조사 결과 10월 화훼 거래 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22% 줄었다. 통계청의 소매판매지수는 나쁘지 않다. 지난 10월에 전달보다 5.2%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은행 관계자는 “소매판매지수는 서비스를 제외한 재화가 대상이기 때문에 전체 소비시장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유의미한 지표가 나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설4=법카 대신 개인카드나 현금 사용이 줄었다?
법카 대신 개인카드나 현금 사용량이 감소했다면 법인카드 사용액과 소비심리 위축 간의 괴리는 설명된다. 그러나 개인카드 승인금액은 지난해 10월 47조32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8.5% 증가했다. 11월엔 46조79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9.6% 증가한 수치다. 공과금을 제외한 개인카드 승인금액도 각각 6.4%, 15% 늘었다.

항목별로 봐도 10월과 11월 개인카드의 일반음식점 승인액은 6조8000억원과 6조33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상승했다. 9월(6조2100억원)보다도 늘었다. 10월 유흥주점 승인금액은 법인카드의 감소율에 훨씬 못 미치는 -2.3%에 그쳤다. 골프장 개인카드 승인금액은 오히려 7% 증가하면서 법인카드의 감소분을 채우고도 남았다. 남은 가능성은 현금 이용의 감소밖에 없지만 김영란법으로 유독 현금 사용량만 줄었다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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