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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균형의 왕 #8

중앙일보 2017.01.15 00:01
<매일 의지하며 살고 있구나>
 
집 근처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다. 직원은 친절했고 우유 값이 내리면 커피 값도 내렸으며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었다. 아는 여자는 ‘오후에 가면 아줌마들이 많아서 싫다’던 곳이었지만 난 좋았다. 그런데 몇 달 전 테이크아웃을 하러 갔을 때, 이 카페는 공사 중으로 변해 있었다. 뭐지 이건. 어떠한 예고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없어지는 건가. 또 뭐가 들어오려나. 섭섭함을 억지로 마음 밖으로 밀어낸 후 다른 카페에 정을 붙였다. 이런 순간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이겠지만 확실히 약간은 끔찍하다.
 
그러다 오늘 문득 그 카페가 있는 곳에 들렀다. 카페는 리모델링 후 재개장한 상태였다. 들어갔다. 전보다 조금 고급스러워졌지만 정확히 그만큼 웃음기가 사라진 카페였다. 카페의 공기가 쌀쌀맞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어설프지만 끌리는 데뷔 앨범’을 낸 뮤지션의 ‘세련되지만 덜 끌리는 소포모어 앨범’을 듣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커피는 여전히 맛있었고 무엇보다 2층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이 2층이야말로 결정적이었다. 창가 자리가 많았고 콘센트도 자리마다 구비해놓았다. 공간은 넓었고 좋은 음악이 흘렀다. 마이클 잭슨의 ‘Butterflies'가 나오는 카페를 촌스럽다고 말할 순 없다. 원고 마감과 책 작업 등을 끝낸 후, 다시 이곳에 정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이 카페에서 집으로 오는 골목엔 많은 가게가 있다. 치킨집도 있고 세탁소도 있고 편의점도 있다. 물론 돈가스집도 있다. 이 돈가스집은 내가 종종 가던 집이었다.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음식에 정성이 있었고 무엇보다 맛있었다. 나는 맛없는 것도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되도록 맛있는 걸 먹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나에게 이 돈가스집은 되도록 자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 돈가스집을 못 찾을 뻔했다. 진심으로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잠깐 의심했다. 가게 안이 다 비워져 있어서 못 알아챘기 때문이다.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간판도 사라졌다. 나는 길가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기 위해 침착하려고 애썼다. 내가 한창 이 돈가스집에 자주 드나들 때, 내 또래처럼 보이는 주인은 언젠가 한번 내가 이 근처에 사는지 묻기도 했다. 자주 오는 손님과 말을 섞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또 그는 내가 김치우동을 포장해가려고 하자 김치우동은 포장해가면 맛없다고 판매를 거부(?)하기도 했다. 거부당해 기분이 좋아진 낯선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그러니까 일의 동선이라던가 돈가스가 한동안 질렸다던가 하는 변변치 않은 이유로 이 가게를 점점 찾지 않게 되었다. 요즘에는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자 주인과 나의 사이도 처음으로 돌아갔다. 다시, 주인은 그냥 계산만 해주었다.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갔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2주도 채 안 되었다. 왜 그때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제 곧 가게를 접는다고, 혹은 망할 집 주인에게 쫓겨났다고, 혹은 인생을 걸 다른 일을 찾았다고, 혹은 당신이 자주 안 와서 가게가 망했다고, 그것도 아니면 그동안 혼자 돈가스집 하느라 졸라 힘들었다고, 왜 나에게 말 한마디를 안 했을까. 텅 빈 가게를 보고도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줄 알았나. 내가 ‘잘난 척하면서 김치우동 안 팔더니 잘 됐다’고 할 줄 알았나. 아니면 내 생각이 아예 나질 않았나.
 
때로는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가장 큰 영향을 줄 때가 있다. 때로는 내 인생에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하루를 뒤흔든다. 말 한마디 섞지 않은 ‘페친’들도 어쩌면 그런 존재일 것이다. 아, 나는 늘 의지하고 있구나. 매일 의지하며 살고 있구나.
 

<이 글은 쉬운 글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글 아래에 ‘글이 너무 어렵다’고 토로하거나, 때로는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종종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느 쪽이 진실일까 가늠해본다. 정말로 글이 어려운 걸까, 아니면 읽는 이가 이해를 못하는 걸까.
 
나는 글이 무조건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이 무조건 쉬워야 한다고 말하는 건 반지성주의의 다른 말이거나, 자신의 지적 게으름을 글쓴이에게 책임 전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정말로 ‘잘 못 쓴’ 글도 있다. 읽는 이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사유를 동원해도 잘 읽히지 않는 글이라면, 그리고 이런 이들이 다수라면, 글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지식 전달과 읽는 이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면.
 
그래도, 나 역시 쉬운 글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쉽더라도 한 번쯤은 고민해볼 수 있는 문장이 더 좋다. 겉으로는 직관적이지만 그 뒤편에 ‘돌아가는 길’을 간단히 품은 문장이 더 좋다. 쉬운 건 언제나 좋다. 하지만 쉬우면서도 상상하게 해주는 문장이 더 좋다. 이렇듯 ‘균형’을 의식하는 문장이 난 좋다. 그래서 요즘은 직접 글을 쓰거나 어떤 글을 번역할 때에 이 균형감을 늘 고려한다. ‘쉽지만 쉬운 것만이 전부가 아닌 문장’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야말로 요즘 나의 화두다.
 
나의 글에 한해 말하자면, 나는 글을 쉽게 쓰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들의 출판 제안에도 "전문적인 영역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쓴다"는 이유가 꼭 있었으니까. 그런데 흥미로운 건 나는 평소에 '글을 쉽게 써야지'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무의식에 내면화되어 있을 순 있지만 의식적으로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냥 나라는 사람의 특성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글이 쉽다는 건 깊이가 없고 일차원적이라는 말이기보다는, ‘디테일’과 ‘균형감’이 좋다는 뜻일 수도 있다. 빈틈없이 여러 부분을 꼼꼼하고 복합적으로 챙기는 디테일의 면모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의문을 품을 공간을 사라지게 한다. 또 글을 입체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역할/성격/층위의 문장과 표현을 균형 있게 동원하고, 너무 무겁지도 너무 의미 없지도 않게 글의 온도를 조절하는 균형감이 읽는 이의 이해를 방해할 리 없다.
 
‘쉬운 글’의 절대적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글을 읽을 때마다 ‘읽는 이의 성의’와 ‘쓴 이의 결과물’을 오가며 치열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어떤 글을 내가 잘 이해 못했을 때 난 일단 나에게 책임은 없는지부터 생각한다. 찝찝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실체적 진실일 것이다. 역시 세상에 쉬운 글, 아니 쉬운 일은 없다.
 

<날씬한 다리 +30, 눈 확대 +20>
 
얼굴과 몸매를 보정하는 사진 앱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 같다. 모두가 자신의 다리 길이를 늘인 후 사진을 올리지만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피부 미백도 마찬가지다. 그 과도함은 누구도 그 사진이 그 사람의 실제 피부라고 믿지 않게 만든다. 어떨 때는 너무 하얗다 못해 투명해서 얼굴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적은 S.E.S.의 'I'm Your Girl' 뮤직비디오 이후로 처음이다.
 
보정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또 개개인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다. 이 글에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고 봐도 좋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떨 때는 사진을 찍을 당시의 시각적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사진이 실물보다 나쁘게 나오거나 혹은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때 보정은 필수라면 필수다.
 
하지만 오늘날의 보정은 이런 차원을 넘어섰고, 아예 다른 영역으로 이동한 느낌이다. 실은 이미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는데 내가 뒷북을 치고 있다. 농담이 아니고, 아니 사실 반쯤 농담이지만 보정 후의 그 기이한 신체는 '왜곡'이라는 면에서 피카소의 큐비즘과 그리 다를 바도 없다. 10등신에 육박하는 그 사진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온다. ‘캡틴 츠바사’의 작가가 한동안 모든 캐릭터를 그렇게 그려서 욕먹은 적이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막 죄다 10등신.
 
사진 속의 모습이 그 사람의 실제 모습과 너무도 다름을 알면서도 ‘좋아요’를 누르고 칭찬 댓글을 다는 풍경. 스스로도 자신의 실제 모습이 사진 속 모습과 다름을 알면서도 굳이 그 사진을 올리며 ‘#셀기꾼’이라는 태그를 다는 풍경.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이렇게 속이세요”라고 말하던 보정 앱이 이제는 이렇게 속삭인다. “자, 사실 사람들도 다 알아요. 그러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로 속아주면서 좋아해 주자고요. 이게 현실인지 가상인지,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 세계에서 서로 기분 좋으면 되잖아요?”

작가 소개    
대중음악 평론가, 혹은 힙합 저널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연재 중.
레진코믹스 힙합 웹툰 <블랙아웃> 연재 중.
<서울힙합영화제> 기획 및 주최.
<건축학개론>을 극장에서 두 번 봤고 두 번 다 울었음.
 
주요 저서 및 역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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