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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MI6맨의 ‘트럼프 X파일’…처음 돈댄 건 경쟁자 젭 부시 측

중앙일보 2017.01.14 01:12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역 인근 지역인 그로버너 가든스를 지나더라도 눈여겨보진 않게 될 게다. 수려한 동네라곤 하나 특징이 있다고 보긴 어려워서다. 바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전직 요원인 크리스토퍼 스틸(52)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러시아의 유착 의혹이 담긴 ‘트럼프 X파일’의 생산자다. 신분이 드러난 이후에 잠적한 이이기도 하다. 그의 1년여는 미 공화당·민주당, 영미 주요 언론사, 미 연방수사국(FBI)과 영국 정부까지 등장인물로 나서는 말 그대로 ‘첩보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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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미국 정보 컨설팅업체(Fusion GPS)의 발주로부터 시작됐다. 그에게 트럼프와 러시아의 관계를 캐보란 주문이었다. 그는 ‘적역’이라고 할 만했다.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스파이’였다. 대학에서 토론 클럽을 이끌 당시 옥스퍼드대 맞상대가 보리스 존슨 현 영국 외무장관이다. MI6 요원으로 1990년대 러시아에서 일을 했는데 함께한 이가 알렉스 영거 현 MI6 수장이다. 스틸은 20년간 러시아 데스크에서 일한 러시아통이었다. 애초 전주(錢主)는 공화당 경선 주자였던 젭 부시 쪽 지지자들이라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된 이후엔 민주당 지지자들이 돈을 댔다고 한다. 스틸의 정보는 곧 워싱턴 정가는 물론 미·영의 유수 언론사들에 뿌려졌다.
FBI와의 접촉은 지난해 7월부터였다. FBI의 국제축구연맹(FIFA) 부패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고위직이 유럽으로 옮겨 오면서다. 스틸은 FIFA 비리 정보를 제공한 이 중 한 명이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의 요청으로 FIFA 비리 정보를 수집했었다고 한다. FA는 2018년 또는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FBI는 당시 스틸의 FIFA 정보가 신뢰할 만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스틸은 트럼프 문서를 넘기기로 했다. 지인들은 “워터게이트 이상 갈 만한 사건이라고 여겼다”고 전했다. 스틸은 사전에 영 관리들에게 알려 FBI와의 접촉에 대한 허락을 요청했다. 영 정부는 이를 허락했고 총리실도 그 내용을 통보받았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에 대해 영 총리실과 외교부는 논평을 거부했다. 스틸과 FBI의 접촉은 11월에 끝났다. FBI의 느린 진행 속도에 스틸이 연락을 끊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존재는 암암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틸 자신이 지난해 10월 ‘마더 존스’란 잡지와 익명으로 인터뷰한 일도 있다. CNN에 의해 문서 존재 사실이 알려지고 버즈피드가 괴문서를 전재하자 곧 월스트리트저널이 그의 이름을 밝힐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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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가 생산한 트럼프 문서의 신뢰도는 어떨까. 영미권 언론들이 현재 벌이는 논란이기도 하다. 영국의 BBC·가디언·파이낸셜타임스에선 “신뢰할 만한 요원”이란 평판을 전했다. 데일리텔레그래프는 그러나 “알렉스 영거는 발군이었지만 스틸은 중간 정도 됐다”고 전했다. 특히 그가 MI6 요원으로 마지막으로 담당했던 일이 러시아 정보기관(FSB) 요원으로 영국에 망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스틸이 은퇴한 후 리트비넨코가 방사성 동위원소인 폴로늄이 든 차를 마셔 독살됐는데 러시아 측 소행으로 결론 난 사건이다. 텔레그래프는 “이 사건이 스틸의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불어넣은 듯하다”고 보도했다. 현재로선 단지 소문들을 수집한 것인지 검증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문서를 접했던 유수의 언론들이 보도하지 못한 까닭이다.

한편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트위터를 통해 “MI6 요원은 전직(前職)이란 없다”며 “스틸이 러시아와 미 대통령 당선인에 맞서는 정보를 내놓았다”고 비난했다. 영국 정부도 간여됐다는 주장인 셈이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를 위해 트럼프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영국으로선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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