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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시 쓰고 타 종교 공부 ‘담장 넘는 목사’

중앙일보 2017.01.14 00:19
고진하 목사의 이름조차 몰랐을 때였다.

종교 담당 기자가 그를 만나러 원주로 가자며 이렇게 설명했다.

“시골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목사이면서 시인이기도 합니다.

딱히 교회를 두고 목회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요.

생활 속에서 목회와 수도를 하며 시를 쓰는 ‘영성가’입니다.”

이 말에 혹하여 취재기자를 따라나섰다.

무엇보다 그의 생활 터전이 궁금했다. 만나고 보니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푸른색으로 물들인 개량 한복에 바랑을 메고 있었다.

차림새로 볼 때 목사로 짐작하기 어려웠다.

만난 곳이 원주 시내였다.

집이 꽤 먼 곳에 있으니 시내에서 인터뷰하자고 그가 제안을 했다.

“목사님! 생활 속에서 목회와 수도를 하며 시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목사님의 생활 공간을 봐야겠습니다.”

“아내가 출타 중이라 집 문이 잠겨 있어요. 열쇠도 없으니 여기서 인터뷰합시다.”

“목사님의 터전에 삶의 메시지가 담겨 있을 테니

그것을 봐야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못해 그가 집으로 안내를 했다.

차로 20여 분 거리였다.

대문은 그의 말대로 잠겨 있었다. 낭패였다.

그때 그가 대문을 지나 옆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야트막한 담장 앞에 섰다.

등에 진 바랑을 벗어 취재기자에게 건넸다.

누가 봐도 담장을 넘을 모양새였다. 얼른 카메라를 꺼냈다.

담장을 넘는 순간 카메라를 눌렀다.

카메라 소리에 놀란 그가 깜짝 놀라며 카메라를 쳐다봤다.

딱 도둑질하다가 걸린 표정이었다.

“뭘 이런 걸 찍어요.”

“‘담장 넘는 목사님’, 어쩌면 이 모습이 목사님의 진짜 모습일 거 같습니다.”

그는 목사이면서 타 종교와 동양철학을 공부한다고 했다.

이웃 종교와 철학을 알아야 서로 간의 반목이 없어진다고 했다.

게다가 시가 영성 안에 거하고 영성이 시에 거하는 게 그의 삶이라 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세상이 정해놓은 울타리를 넘나드는 모습이 그의 메시지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집 안을 둘러봤다.

담벼락에 나무로 만든 현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귀한 것은 흔합니다’라 적혀 있다.

담벼락과 장독대며 텃밭에 핀 풀과 꽃, 햇빛과 바람,

흔하디 흔한 것들의 귀함을 말하려 함이다.

집 안 거실 벽엔 나무 막대를 덧대어 만든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이 또한 ‘흔한 것의 귀함’일 것이다.

담장 넘어 집으로 온 소득을 찾은 셈이었다.

그 후, 2014년 12월 말에 그를 다시 만났다.

2015년 새해 벽두에 그가 신문에 편지 형식의 기고문을 쓰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기고문에 게재할 사진을 찍어야 했다.

만난 장소가 또 원주 시내였다.

그에게 기고문에 쓸 내용이 뭔지 물었다.
“‘첫 불’의 의미에 대해 쓸까 생각 중이야. 지난가을에 아궁이를 직접 만들었어.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는 그 ‘첫 불’이 뭉클하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매일 불을 붙이며 사실 모든 불이 ‘첫 불’이지 하는 생각이 딱 드는 거야.

그렇다면 저 구들방에서 혼자 지지든 아내랑 같이 지지든, 매일 밤이 첫날밤인 게지.

이를테면 매일이 태초의 첫날인 셈이라는 얘기를 쓸까 해.”

그의 ‘첫 불’ 이야기를 듣고 또 집으로 가자고 우겼다.

“꼭 가야 하는 거야?”라며 그가 반문했다.

“꼭 가야 합니다. ‘첫 불’ 이야기를 안 하셨으면 몰라도….”

그가 스스로 아궁이에 불 넣는 이야기를 한 터니 안 갈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그의 집으로 갔다. 그래도 이번엔 담장을 넘지 않았다.

대문으로 들어갔다. 대문 우체통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날마다 좋은 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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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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