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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파리에 개보다 고양이가 많은 이유

중앙일보 2017.01.14 00:12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진중권 지음, 천년의상상
336쪽, 1만8000원

프랑스 파리의 거리에서 ‘개똥 지뢰’를 조심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실제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개똥만 전문으로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이 있을 정도로 개똥 천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골목길에선 여전히 발을 딛기 전에 바닥을 잘 살펴야 한다.) 그만큼 파리지앵들의 견공 사랑이 지대하다는 건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대형 할인매장이나 조그만 슈퍼마켓 어딜 가봐도 개 사료보다 고양이 사료가 많은 거였다.

알고 보니 고양이 수가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던 거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은 있어도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사람은 없었기에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목줄을 매고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니는 건 고양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창문을 넘어 파리의 그 유명한 지붕 위로 사뿐이 뛰어올라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도도히 걷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고양이의 속성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저자가 고양이 집사를 자처하는 걸 보면 “지혜로운 고양이 집사가 되기 위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인류의 역사(심지어 고양이의 역사까지)와 문학, 철학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찾아 종횡무진 내달리는데, 저자 특유의 입담에 어렵다거나 지루한 줄 모르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고양이를 길러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폼페이 유적의 고양이 모자이크. 폼페이 유적지에서 고양이 유해는 한 구도 발굴되지 않았지만 그리스 장인이 제작한 모자이크는 여럿 있었다. [사진 천년의상상]

폼페이 유적의 고양이 모자이크. 폼페이 유적지에서 고양이 유해는 한 구도 발굴되지 않았지만 그리스 장인이 제작한 모자이크는 여럿 있었다. [사진 천년의상상]

오늘날 파리의 강아지 수를 고양이 수가 앞질렀듯, 고양이는 ‘현대성’을 지닌 동물이다.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은 주인에게 많은 걸 의존하는 개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까도냥(까칠한 도시 고양이)’스러운 고양이가 잘 어울릴 수 있다. 작가 샤토브리앙이 일찌감치 간파한 그대로다. “내가 고양이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 성격이다. 독립적이고 거의 냉정해서 (…)자신이 원할 때 외에는 결코 복종하지 않는다.”

책은 그런 고양이의 현대성을 예술 속에서 짚어낸다. “’올랭피아’를 그릴 때 마네는 (…) 누운 창녀의 발 아래에 검은 고양이를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의 모델이 된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는 같은 자리에 하얀 강아지가 있다. (…) 예술의 현대성은 이렇게 시작됐다.”

고양이는 철학적이기도 하다. 고양이는 하루 18시간 이상을 잔다고 한다. 육체적으로 하는 일도 별로 없는 고양이가 그만큼 오랜 시간을 자야 하는 건 머리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뭐 하느라 머리를 쓰겠나. 사유를 하는 것이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준다. “어느 날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서다가 자기가 기르던 고양이와 마주쳤는데, 자신의 알몸을 바라보는 고양이 시선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것도 고양이를 길러본 사람은 안다. 뭔가 실수를 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의 시선…. ‘하여튼 인간들이란…. 쯧쯧.’ “내가 고양이와 놀 때에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철학자 몽테뉴의 고백이 그래서 나온다.

반면 데카르트에게 모든 동물은 기계 따위일 뿐이었다.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라는 책 제목은 그런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조롱이다. 저자는 말한다. “제 책을 읽고 길냥이를 보게 되면 따뜻하게 말 걸어주면 좋겠어요. 말 걸어주는 방법은 T. S. 엘리엇이 얘기했잖아요. 고양이들에게 약간의 뇌물이 필요하다고요.”
 
[S BOX] “세상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로 만든 생명, 고양이”
페르시아의 전설적 영웅 루스팜이 어느 날 도적떼에 잡힌 노인을 구한다. 노인은 사실 마법사였다. 사막에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서 노인이 보답을 위해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이에 루스팜이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보세요. 타는 모닥불의 따뜻함, 피어 오르는 연기의 향긋함, 밤 하늘에 반짝이는 저 별들. 모든 게 여기 다 있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그러자 노인은 모닥불의 연기 한 줌과 혀처럼 날름거리는 불길 한 자락, 가장 빛나는 별 두 개를 취해 손에 모아 쥐고 그 안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가 손바닥을 펴자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털은 연기처럼 잿빛이고, 두 눈은 별처럼 반짝였으며, 앙증맞은 혀는 불길처럼 붉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합쳐 만든 게 고양이인 것이다. 그러니 고양이가 안 귀여울 수가 있나. 페르시아에 남아있는 고양이의 탄생설화다.

이훈범 논설위원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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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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