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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긍정의 아이콘 이지선

중앙일보 2016.12.19 00:01
지난달, 취재기자가 인터뷰 통보를 하며 이지선이란 이름을 얘기했을 때 메모장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 ‘이지선’이라는 이름을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꼭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특징을 적어두는 메모장이었다.
메모장을 찾아보았다.
 ‘긍정의 아이콘, 2000년 7월 30일 교통사고, 전신화상, 2003년 『지선아 사랑해』’라고 메모 되어있었다.
 
그녀의 근황을 검색해 보았다.
지난 6월, 그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를 받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2004년 미국 유학을 떠나 여태껏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게다.
 
인터뷰 장소는 까페였다.
가릴 것 없이 사방이 확 트인 공간이었다.
게다가 삼삼오오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느껴야 하는 그녀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아예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혹시나 인터뷰 중에 사진을 찍으면 그녀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기에 그리했다.
공간도 불편한데다 남다른 아픔을 간직한 그녀이기에 더 조심스러웠다.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까페의 조용한 음악과 주변 사람들의 도란도란 이야기조차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귀를 쫑긋 세워야 겨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간, 사람들의 시선, 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먼저 강연이야기부터 했다.
벌써 1000회 정도 강연을 했다고 했다.
올 연말까지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내년엔 직장에 들어가고 싶어요. 정해진 곳에서 직장생활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긴 하지만 이젠 때가 된 거 같아요..”
 
취재기자가 불안한 지 물었다.
“졸업할 땐 남들은 갈데 정해놓고 하더라구요. 그걸 보며 좀 불안했어요. 사실 저는 졸업이 목표여서 그런 생각조차 못했어요.”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시지 왜 구태여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려는지?”
“애당초 한국에서 제가 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미국에 간 겁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적응을 잘 못했어요. 떠나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산 거 같아요.”
 
미국에서 적응을 잘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었다.
웃는 모습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꺼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꼭 카메라로 담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좀 더 참기로 했다.
행여나 카메라를 꺼냈다가 어색한 분위기로 전환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사고 이야기였다.
취재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고 이야기 꺼내도 괜찮을까요?”
“저는 괜찮네요 이상하게도….”
 
그러면서 또 웃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곧 잘 웃었다.
웃고 나선 머리를 넘기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잇는 동작이 습관처럼 나왔다.
 
“내 가족이나 내 실수가 아닌 사고였으니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만약 오빠의 실수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말 못할 거 같지만요. 제가 수술을 아주 길게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신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소화가 된 거 같아요.”
 
소화라는 표현에 과연 ‘긍정의 아이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인터뷰할 때의 표정이 너무 좋네요.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 놓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편하게 하세요.”
 
그녀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편하게 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레 나 혼자 걱정을 했던 게다.
서둘러 카메라를 준비해서 꺼내들었다.
그 순간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강연할 때 초반 일년은 똑같은 얘기 계속하는 게 싫었어요. 사람들이 심각하게 듣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농담을 섞어서 했어요. 그런데 어디를 가도 제가 똑같은 말만 계속하는 거예요. 제 스스로 녹음테이프가 된 거 같아 싫더라구요. 그러다가 삭개오라는 인물을 알게 됐습니다. 군중 속에서 예수를 보려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예수가 ‘내려오라’며 그 사람 집도 찾아가셨어요. 삭개오는 이후 재산 절반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었죠. 제가 힘겨워할 때 지인 한 분이 ‘삭개오를 떠올려 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삭개오가 누구를 만나도 예수를 만난 순간을 늘 얘기하지 않겠냐고요. 그때부터 듣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맨 앞에 앉아서 매번 처음 듣는 얼굴로 즐거워하시며 듣더라구요. 처음부터 그 고통을 함께 해오셨으면서도…. 참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내색 안 했지만 울컥했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내색 안 하려 했는데 울컥한 마음을 들킨 건가 하는 순간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사실 왼쪽 얼굴이 더 이쁜데요.”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난 못난 사진기자였던 게다.
지레 나의 기준으로만 그녀를 보고 판단했었다.
적어도 그녀는 남들과 다르니 사진 찍히는 데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는 게 나의 기준이었다.
공간, 소음,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하며 카메라도 꺼내지 못한 채 혼자 안절부절 했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서도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그녀의 오른쪽 얼굴만 찍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기준은 그게 아니었다.
왼쪽 얼굴이 더 이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이후에도 편하게 말했고 편하게 행동했다.
다소 말하기 껄끄러운 이야기도 아랑곳없이 했다.
이런 이야기들이다.
 
“수술을 한 사십 번 했어요. 여름에 땀 배출 안 되니 힘들었죠.
그걸로 체온 조절을 해야 하는데….그런데 요즘은 괜찮아요.  다른 곳에서 땀이 많이 나요.”
“제가 공부할 때 LA 쭈글이였어요. 누가 봐도 꼴찌였어요. 그런데 졸업은 꼴찌가 아니었어요.”
“책을 잘 안 읽어요. 그래서 어려운 말을 못해요. 그래서 책을 쓸 때도 일기 쓰듯 했죠.”
“7월 30일, 처음엔 기억했죠. 이젠 잊어 버려요. 오빠도 ‘오늘이 그날이네’라며 꼭 전화를 했었는데 이젠 오빠도 잊어 가는 거 같아요.”
“이제 편해졌어요. 나의 삶이 있고 다들 다른 질문을 갖고 사는 거잖아요. 똑같이 살려고 마음 졸이고 애써는 게 에너지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나는 쟤보다 훨씬 낫네’라고 비교할 수 있어요. 그 마음이라도 필요할 때가 있는 줄은 알지만 저를 그렇게 안 봐줬으면 좋겠어요.”
 
당당했다.
마치 ‘나는 나다, 이지선은 이지선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게다가 이런 말끝엔 어김없이 활짝 웃었다.
‘긍정의 아이콘’이라 적어 두었던 메모장의 내용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당당하고 밝은 표정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쉬운 게 있었다.
까페의 배경이 어지러운 탓에 그녀의 표정이 제대로 돋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까페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에 배경이 깔끔한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앉아서 찍어야 할 정도의 작은 배경이었다.
의자가 필요했다.
까페 담당자에게 의자 하나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바깥으로 가져 갈 수 없다고 했다.
단호했다.
다시 부탁하며 이지선씨 사진 찍을 용도라고 말했다.
그 담당자는 이지선이라는 이름을 듣더니 흔쾌히 가져나가라고 했다.
이지선이라는 이름 석 자로 해결된 게다.
 
그녀는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었다.
“제가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을 가닥 잡아가는 상황입니다.”
이지선이라는 이름 석 자로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지선이라는 이름 석 자로 의자가 해결되듯 그녀는 이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녀에게 요청을 했다.
“오늘의 사진 콘셉트는 ‘나는 이지선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입니다. 그 모습을 보여 주세요,”
“하하! 좋은데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되죠?”
“인터뷰 도중에 웃으며 머리를 넘기는 동작을 자주 하던데요. 마치 그 모습이 ‘나는 이지선이다’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이렇게요”라며 특유의 동작을 했다.
미처 카메라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한 번만 더해 주세요. 놓쳤어요.”
그녀는 다시 또 그 모습을 보여줬다.
찍고 보니 아쉬웠다. 머리에 깊숙이 들어간 손이 잘 안보였다.
“한번 더요. 손이 머리에 깊숙이 들어가서 잘 안 보이는 게 아쉽네요.”
“이러면 손도 잘 보이나요? 하하!”
사실 그녀의 손도 남달랐다.
하지만 손을 보여주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이런 긍정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그녀가 독자에게 전할 사인과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그 메시지에서 답이 있는 듯했다.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보물들을 꼭 찾으시길!’이라는 문구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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